원어 항목명 | Ha Sang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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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相玉 |
영문 | Ha Sangok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 미국 하와이주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887년 5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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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80년 8월 2일 |
추모 시기/일시 | 2011년 |
출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지동 |
거주|이주지 | 미국 하와이주 |
활동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 |
원어 항목명 | Ha Sangok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일제 강점기 미국 하와이주와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 등에서 활동한 실업가이자 독립운동가.
하상옥은 1887년 5월 22일 서울 상사동(相思洞)[현 연지동]에서 태어났다. 1900년 경성사범학교에 입학하여 3년간 수학하였다. 기독교에 입교하여 서울 상동교회에 출석하였고, 상동청년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04년 12월 미국 하와이로 이민하여 4개월간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을 하였고, 1905년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였다. 백인 집에서 일하며 1907년 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국민 계몽과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설립한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장인환·전명운 의사의 의거가 일어나자 장인환 의사의 옥중 뒷바라지를 오랫동안 맡았다. 1910년 대동보국회와 공립협회가 통합하여 대한인국민회로 개편되자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 회장, 법무원, 총무, 대의원, 선전부 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대한인국민회 지방총회 사무원으로 일하면서 상항 한인감리교회에 오랫동안 출석하였다. 세탁소를 운영하며 모은 돈으로 미주 지역 한인들의 친목과 단결에 앞장섰으며 교회와 독립운동을 위해 많은 독립 의연금을 후원하였다.
1913년 5월 1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이 창단되었을 때 단우 번호 1번으로 흥사단원이 되었다. 1916년 6월 양복 세탁업을 소규모로 시작하여 크게 성장시켰다. 1918년 1월 샌프란시스코 청년회 회장을 맡았고, 1918년 2월 샌프란시스코 국어학교를 개교하여 2세 자녀들에게 국어 교육을 통해 민족혼을 심어주는 데 주력하였다. 1918년 4월에는 콜로라도 푸에블로 지방으로 이주하여 대한인국민회 푸에블로지방회 구제원에 선임되었고 1919년에는 지방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20년 7월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와 1921년과 1923년에 샌프란시스코지방회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일제가 만주를 침략한 이후 대일 전선에서 투쟁하는 중국군 19로군 지원을 위한 군자금 모금에 참여하였고,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이후에는 미국의 전쟁 승리를 지원하는 일에 적극 참여하였다. 1915년부터 1945년까지 독립 의연금 모금에 적극적으로 출연하였다. 1980년 8월 2일 샌프란시스코에서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하상옥의 공적을 기리어 2011년 건국 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