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Choy Chinh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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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鎭河 |
영문 | Choy Chinha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미국 캘리포니아주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889년 3월 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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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06년~1908년 |
몰년 시기/일시 | 1967년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출생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평양 부산면 용궁리 |
거주|이주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 |
학교|수학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 |
활동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 |
활동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 |
묘소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 웨스트 워싱턴 블러바드 1831 |
원어 항목명 | Choy Chinha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회장 |
일제 강점기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활동한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
최진하는 1889년 3월 3일 평안남도 평양 부산면 용궁리(平壤 斧山面 龍宮里)에서 태어나 12세까지 향리에서 한문을 수학하였다. 1903년 중학교에 입학하여 1906년 졸업하였고 1906년부터 1908년까지 평양 광성학교(光成學校) 교사로 근무하면서 1년간 대학 수업을 받았다. 1909년 20세 때 전라북도 전주로 이사하여 1913년까지 신흥학원(新興學院) 교사로 일하였으며 1914년부터 1916년 8월까지 3년간 신학을 공부하면서 전주 기독교 교회 전도사로도 사역하였다.
1916년 유학을 목적으로 중국 상해에서 차이나호를 타고 9월 3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다. 1917년 1월 대한인국민회 북미 지방총회 총무로 임명되어 활동하면서 10월 9일 흥사단에 입단하였다. 1918년 야학에서 어학을 공부하며 북미 지방총회 구제원으로 일하였다. 1919년 북미 지방총회 총무로 활동하면서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독립 자금을 모집·송금하여 임시 정부의 군사 및 외교 활동을 적극 후원하였다. 1920년 북미 지방총회 부회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으며 11월 23일 개최된 북미지방총회 제12차 총선거 결과로 총회장에 선출되었다. 1925년까지 연이어 북미 총회장으로서 대한인국민회를 지도하였다. 1925년 5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미외교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35년 3월 백일규의 후임으로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으로 취임하였고 1936년 5월 17일 로스앤젤레스에서 각 단체 대표들과 간담회를 개최하여 재미 한인 사회의 통일책과 발전책을 연구하고 광복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을 결의하였다. 1937년 1월 북미 대한인국민회의 개정된 신헌장에 의하여 개최된 제1차 대표대회에 참석하여 북미 대한인국민회 중앙상무부 총무로 선임된 이래 1939년까지 연임하였고 특히 태평양 전쟁 이후 조국이 광복될 때까지 한국의 독립을 위한 외교 사업과 국방 후원, 한인 동포의 전시 신분 보장을 주도하는 동시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옹호와 광복군 편성을 적극 후원하였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1948년부터 1950년까지 북미 지방총회 중앙상무부 총무와 『신한민보』 주필을 역임하였다. 최진하는 1967년 78세에 사망하였다.
최진하의 묘소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로즈데일 공원묘지[Angelus-Rosedale Cemetery]에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최진하의 공적을 기리어 1995년 건국 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