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Kyung Shin Ch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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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車敬信 |
영문 | Kyung Shin Char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892년 2월 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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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78년 9월 28일 |
추모 시기/일시 | 1993년 |
출생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북도 선천군 가물남 |
활동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 |
원어 항목명 | Kyung Shin Char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여 |
일제 강점기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한 여성운동가이며 교육가, 독립운동가
1892년 2월 4일 평북 선천군(宣川郡) 가물남(嘉物南)에서 아버지 차기원과 어머니 박신원의 여섯 딸 중에 맏딸로 태어났다.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차경신은 모친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장로교 학교인 보성여학교를 졸업하고 강계 명신여학교 교사로 4년간 봉직하다가 서울 정신여학교 사범과 1년 과정을 졸업하고 함흥 영생학교와 원산 진성여학교 교사로 봉직하면서 교육을 통한 민족 계몽운동에 힘썼다. 1919년 평안북도 선천 지역 3·1운동을 주도하고,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송부하였다. 일경의 체포령으로, 만주 관전현으로 망명한 후 1919년 11월 대한청년단연합회 총무겸 재무로서 국내외를 다니면서 군자금을 모아 임시정부로 전달하였다. 1921년 1월에는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婦人鄕村會)와 연계하여 군자금을 모금했으며, 1921년 9월 여자연합단을 결성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자금을 지원하는 등 독립운동 자금 조달에 힘썼다.
1924년 1월 미국으로 건너가 초대 대한여자애국단 단장과 대한인국민회 회원으로 독립운동을 지속하였다. 로스앤젤레스에 한국어 학교를 세워 초대 교장으로 재미 한인 자녀들의 민족교육에 힘썼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애국부인회 총본부가 로스앤젤레스로 옮기자 1932년부터 1939년까지 애국부인회 총단장으로서 미국 곳곳에 지회를 조직하고 임시 정부·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 군축선전비·광복위로금·만주동포구제금·독립신문사·수재의연금·고아원 원조비 등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구호금을 모아 고국으로 보내는 구제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은 휴유증으로 평생을 관절염과 신경통으로 고통받았다. 1978년 9월 2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차경신의 공로를 기리어 1993년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