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鄭鳳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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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미국 하와이주 캘리포니아주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수학 시기/일시 | 191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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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2014년 |
활동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
활동지 | 미국 하와이주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한국독립당 호놀룰루지당 위원장 |
일제 강점기 미국 하와이주를 중심으로 활동한 재미 한인 독립운동가.
정봉관은 1908년 12월 공립협회 샌프란시스코지방회에 가입하고, 1915년 8월 29일 대한인국민회 로스앤젤레스지방회가 주최하는 국치기념식에서 연설을 하였다. 1916년 로스앤젤레스 중학교 4학년에 재학하였다. 1922년 9월 15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조직된 금요강의회(金曜講義會)의 서기로 선임되었다. 1923년 호놀룰루 우편국에서 근무하였고, 1923년부터 1924년 하와이 마이미 교회 엡윗청년회[Epworth League] 회장, 1924년 재미 한인 실업과 생산력 향상 위해 조직된 공제사의 총무, 1925년 하와이 대한민국임시정부후원회에서 발행한 『단산시보(檀山時報)』의 이사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자동차 부품 판매업에 종사하고 있던 1938년 12월 하와이에서 결성된 중한민중동맹단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939년 중한민중동맹단 이사장, 1940년 구제금 모집 발기인 및 한인연합위원회 위원, 1942년 9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에서 설립한 국방공채위원회의 서기로 국방 공채 매입 활동을 펼쳤다. 국방공채위원회는 1943년 1월 초 한미공채위원회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1943년 7월 10일부터 1943년 8월 29일 한미공채위원회에서 한미 승전 후원금 모금 활동을 하였다. 1943년 중한민중동맹단 이사, 1944년 조선민족혁명당 하와이 총지부 감찰위원부 위원, 한국독립당 하와이총지부 검찰위원, 1945년 한국독립당 호놀룰루지당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정봉관의 공적을 기리어 2014년 건국 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