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Helen Ah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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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惠鍊 |
영문 | Helen Ah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미국 캘리포니아주 |
시대 | 근대/개항기 |
출생 시기/일시 | 1884년 4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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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69년 4월 21일 |
추모 시기/일시 | 2008년 |
출생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강서군 보림면 화학리 |
묘소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공원 묘지 |
원어 항목명 | Helen Ahn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여 |
일제강점기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
이혜련은 1902년 9월 3일 결혼 다음날, 남편 안창호의 미국 유학 길에 동반하여 10월 14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다. 안창호가 미국을 떠나 국내와 러시아, 중국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동안 백인집의 청소, 빨래, 요리 등 집안일을 해주어 가사를 책임졌으며, 맏아들 필립 안과 과일 가게를 운영하면서 재미 한인사회의 대모 역할을 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로스앤젤레스 대한부인친애회에 소속되어 독립의연금 모금에 솔선수범하였으며 미주 여성단체가 통합된 후에는 대한여자애국단 로스앤젤레스지부에서 활동하며 국민의무금, 이십일예납금, 국민회 보조금, 특별의연금을 모금하고 미국 적십자사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대한여자애국단은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재난민과 부상병들을 돕기 위해 약품과 붕대 등을 모집하고 기금 모금에 나서 난민 구제 의연금을 송미령에게 송금해 주었으며 일화배척운동에도 열렬히 참가하였다. 1940년 한국광복군 창설 소식이 전해오자 대한여자애국단 총부 임원회를 개최해 광복군 후원금 500달러를 보내기로 결정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무총장인 이시영 앞으로 송금하였다.
해방 후 1946년 1월 6일 대한인국민회 총회관에서 열린 신년도 첫 총회임원회에서 이혜련은 대한여자애국단 제6대 총단장에 선출되었다. 쿠바 거주 동포들이 노동정지를 당해 극심한 생활난으로 구제를 요청해오자, 각 지부별 구제금 모금에 나서 121달러를 지원하였다. 한편, 6.25전쟁 동안에도 적십자와 피난민을 돕기 위해 한국 구제회[Korea Relief Society]를 조직하여 자원봉사하며 전쟁 중에 있는 고국으로 옷가지, 약품, 담요 등의 갖가지 물건을 보내어 구제활동을 전개하였다. 1963년, 막내 안필영[당시 36세]과 함께 61년 만에 고국을 방문하여 남편을 대신해 한국 정부로부터 대한민국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