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천

원어 항목명 Moses Lee
한자 李忠天
영문 Moses Lee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미국 하와이주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2년 4월 11일
몰년 시기/일시 1997년 5월 3일
추모 시기/일시 2003년
출생지 미국 하와이주
학교|수학지 미국|중국 상해
활동지 중국 상해|중국 남경|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시
원어 항목명 Moses Lee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1912년 미국 하와이에서 출생하여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1912년 하와이에서 출생하여 대학생활 중 1933~1937년에 중국 상해(上海)로 가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다가 건강악화로 하와이로 돌아와 2차 세계대전 때 조국 독립을 위해 미국 공군으로 참전한 독립운동가이다.

활동 사항

이충천은 1912년 4월 11일 하와이에서 출생하였고, 유타(Utah)대학에서 수학 중 중 부친 이학주의 명으로 1933년 5월 중국 상해(上海)로 도항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金九) 등에게 우리말·민족문화사·중국어를, 이범석(李範錫)·이청천(李靑天)에게 독립운동방략을 배웠다. 김구는 조종사 자격을 갖고 있는 이충천에게 “하늘을 찌르라”는 뜻의 충천(衝天)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1934년 2월부터 중국 남경(南京)에서 한인들의 낙양군관학교(洛陽軍官學校) 입학을 권유하고, 남경 거주 일본 간첩과 잠복관헌 색출을 위해 중국 경찰과 협동작전을 폈고, 1935년 4월 낙양군관학교 교관으로 한국 학생의 군사훈련을 담당하였다. 1936년 12월 김구의 명령으로 남경에서 엄항섭과 한국국민당과 접촉하며 영어 및 중국어판 신문기자로서 독립운동기사를 수록하였고, 항일투쟁과 독립쟁취에 관한 출판물을 영어와 중국어로 번역·출간하였다. 『한민(閒民)』 3호에 ‘무장을 준비하자’라는 글을 기고하여 한인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국민당 중심으로 단결할 것을 촉구하였다.

1937년 한국국민당 청년단 선전원으로 대외선전업무를 하던 중 말라리아에 걸려 건강이 악화되자, 하와이로 귀국하였다. 1937년 10월 21일 호놀룰루 선교기념관에서 개최된 한인청년대회에서 민족운동에 대해 연설하였다. 태평양 전쟁 중이던 1944년 미국 공군에 입대하여 활동하다가 해방 후 퇴역하였고, 1950년 6·25한국전쟁 때 극동군 총사령부 정보국에서 포로송환 등의 활동을 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이충천의 공로를 기리어 2003년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民』3(中華民國上海 韓民社, 1936. 5. 25)
  • 『국민보』(1937. 10. 27, 1942. 5. 13, 9. 2, 1943. 1. 13)
  • 『신한민보』(1931. 3. 19, 1940. 12. 12)
  • 김정명, 『조선독립운동』2(東京: 原書房, 1967)
  • 김승학, 『한국 독립사』(독립문화사, 1970)
  • 『독립유공자 공훈록』15(국가보훈처,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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