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송

원어 항목명 Jeong Song An
한자 安貞松
영문 Jeong Song A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미국 하와이주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5년 8월 3일
수학 시기/일시 1910년
수학 시기/일시 1913년
몰년 시기/일시 1989년
출생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
원어 항목명 Jeong Song An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1919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대한인부인회부인구제회를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안정송(安貞松)부인구제회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 한국전재민구제회 등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에 이바지한 인물이다.

가계

재미 사업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안원규(安元奎)와 결혼하고 1919년 1월 8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정착하였다.

활동 사항

안정송의 본명은 이정송(李貞松)으로 안원규와 결혼하면서 성씨(姓氏)를 바꾸어 활동하게 되었다. 1914~1916년간 삼숭여학교와 이화학당, 수원 삼일여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이후 하와이로 건너가 1926년부터 10년 정도 제일한인감리교회에서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쳤고, 대한인부인회부인구제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뒷받침하였다. 1920년 호놀룰루 한인여자기독청년회[YWCA]에 어머니클럽이 조직되자, 안정송을 비롯한 여성 지도자들 중심으로 표지판 읽기, 병원 치료 및 진찰 방법, 자녀 옷 만들기 등 실질적인 교육을 하였다. 1921년에는 호놀룰루 연합 자선회 모금 운동 대표로 2년간 활동하였다. 1941년 호놀룰루 미술관에서 한인 대표로 미군 위문 공연을 주관하고, 1943년 부인구제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45년 3월 21일 『국민보』에 「전시 조선 구제」라는 제목으로 애국심과 독립운동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기사를 게재하였고, 재미한조연합위원회 대표단 자격으로 조국을 방문하였다.

해방 후 『국민보』에 「단오」나 「신탁통치기의 국가 경제 상황」에 대한 칼럼을 기고하고, 1950년 6월 24일 김구(金九) 선생의 추도식에서 애국가를 제창하였다. 1951년 『국민보』 지방 기자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참고문헌
  • 이덕희, 『하와이 이민 100년: 그들은 어떻게 살았나?』(중앙M&B, 2003)
  • 『국민보』(1943. 1. 20, 3. 3, 3. 24, 1950. 7. 12, 1951.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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