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李正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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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미국 하와이주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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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이주지 | 미국 하와이주 |
활동지 | 미국 하와이주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하와이 대한인교민단 총단장 |
일제 강점기 미국 하와이 대한인국민회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임시정부 재무위원으로 독립기금 모금에 일조하고,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대의원과 임시정부 재무부 재무위원 등을 역임하며 재미 한인간 화합과 민족교육을 장려했다.
이정건은 1930년 하와이 대한인교민단 임원진 선출로 이사가 되었으나, 1931년 1월 12일 의사회 개최 때 이승만계 동지회측 대표 의원들과 마찰을 빚었다. 1931년 4월 16일 순회재판 판결은 이정건이 포함된 반이승만 측이 승리했지만, 교민단 내 불화가 극심해졌다. 그럼에도 이정건은 1931년 재미 한인들에게 독립운동 모금활동을 진행하여 임시정부에 재정적인 지원을 하였고, 1932년 1월 하와이 대한인교민단 부단장과 총단장으로 선임되어 활동했다. 당시 이승만 계파 중심의 동지회가 재미 한인 사회를 분열시키는 것을 막고자, 이정건은 하와이 대한인교민단의 해체와 국민회 복설을 통해 하와이 한인사회의 단결과 독립운동을 꾀했고, 1933년 하와이 대한인국민회가 복설되자, 총회장으로서 기관지인 『국민보』를 발행하여 재미 한인간 화합과 안녕, 민족교육 장려와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정건의 공적을 기려 1995년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