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Bum Young L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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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範寧 |
영문 | Bum Young Le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들리시 샌프란시스코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89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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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82년 12월 3일 |
추모 시기/일시 | 2011년 |
출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대문 |
거주|이주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다뉴바시 |
활동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들리시|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 |
묘소 | 그린힐스 메모리얼 파크 |
원어 항목명 | Bum Young Lee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일제 강점기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범영은 진명여자학교와 인천중화학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1913년 미국으로 이민하여 다뉴바 지방의 포도 농장에서 일하며 대한인국민회 다뉴바지방회에 가입하였다. 1919년 대한인국민회 다뉴바지방회의 회장으로서 3·1 운동의 독립 선언 지지문을 발표하고, 1919년 12월 7일 조소앙(趙素昻)의 외교 운동을 후원하는 노동사회개진당의 설립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922년 3월 이범영은 임정구 등과 함께 리들리 한인교회를 설립하고, 교회 안에서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금 지원 및 한인 아동 국어 교육과 관혼상제 활성화를 위해 힘썼다.
이범영은 이승만을 지원하는 구미위원부에 의연금을 전달하고 1920년대 중반 동지회에 참여하였으며 1925년 3월 이승만이 임시 정부로부터 탄핵 면직을 받자 5월 13일 대한민국 임시 의정원에 성토문을 보내고 1929년에는 이승만 환영회의 개회사를 맡았다. 193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구미위원부 재정 후원으로, 1943년 9월 동지회 북미총회가 『북미시보』를 총회 기관지로 발전시킬 때 주필로 활동하였다.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의 특사로 동남아를 순방하였고, 1954년 동남아시아민족반공대회를 서울과 진해에서 개최하는 데 일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범영의 공훈을 기려 2011년 건국 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