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Geun Seong L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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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根成 |
영문 | Geun Seong Le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미국 캘리포니아주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911년 1월 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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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미상 |
추모 시기/일시 | 2015년 |
출생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 |
거주|이주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 |
활동지 | 미국 중가주 |
원어 항목명 | Geun Seong Lee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일제 강점기 미국 서부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총회장 안원규(安元奎)의 딸과 결혼하였다.
1916년 5월 16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고, 1917년 알래스카에서 어업에 종사하다가 1920년대 워싱턴주 아키마에 거주하였다. 1931년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자 중가주 동포들이 개최한 공동회에 참여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지를 표명하고 독립 의연금을 모금하여 후원하였다. 1941년 12월 7일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 참여하였다. 1944년 10월 1일에 미주 한인 전체 대표 회의에 한인학생회 대표로 참여하고, 미국 전략첩보국[Office of Strategic Services, OSS]에서 1945년 1월부터 일본 첩보 활동인 냅코(NAPKO) 작전의 야전 침투 훈련 부대[FEU]에 배속되어 사보타지, 무선 암호 등 훈련을 받았다. 1945년 3월 한반도 침투를 위해 편성된 아이넥조[Einec Mission]와 차로조[Charo Mission] 2개조 중 이근성은 김강·변준호와 함께 차로조에 속해서 평양에 잠입하여 근거지를 세운 다음 일본 부대에 침투하는 임무를 띠었다. 해방 후 한국으로 귀국하여 미군에 복무했고, 1946년 5월 제대 후 미주로 돌아갔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근성의 공로를 기리어 2015년 건국 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