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Joo Een Y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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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柱殷 |
영문 | Joo Een Yang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879년 5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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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74년 |
몰년 시기/일시 | 1981년 8월 30일 |
추모 시기/일시 | 1997년 |
출생지 | 조선 경기도 개성 |
거주|이주지 | 미국 하와이주 |
활동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 |
묘소 | 미국 캘리포니아주 사이프러스 공동묘지 |
원어 항목명 | Joo Een Yang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일제 강점기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1879년 5월 25일 경기도 개성에서 인삼 장수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1913년 8월 23일 이제현과 사진결혼(寫眞結婚) 후 슬하에 장녀 양한미, 차녀 양한숙을 두었다.
양주은은 1903년 3월 2번째 하와이 이민선을 타고 오하우섬 사탕수수 농장에서 2년 6개월 계약 노동 기간을 마친 후, 곧바로 안창호(安昌浩)를 만나러 1906년 4월 5일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상항 한인연합감리교회 창립 신도로 이민 생활을 시작하였다.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 참여하였고, 1907년 대동보국회가 설립될 때 새크라멘토 지역 대리 회장 및 회계를 맡았다. 양주은은 장인환(張仁煥)·전명운(田明雲) 의사의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 저격 사건을 현장에서 목도하기도 했다. 1913년 안창호가 흥사단을 창립할 당시 창립 단원으로서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단우 번호는 6번으로, 평생 흥사단에서 활동하였다.
1923년 샌프란시스코의 다운타운에 서양 식당[Uncle Sam's Restaurant]을 개업해서 40년간 수익의 일정액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출연하였다. 안창호, 이승만(李承晩) 등 독립운동가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대접하고, 유학생과 정치적 망명가들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하였다. 1941년 태평양 전쟁 때는 한인국방경비대[맹호군] 조직에 적극 참여했고, 1943년에는 상항 한인경비대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양주은은 해방 후에도 가난한 유학생과 군인, 정부 인사들에게 숙식을 무료로 제공했고, 1961년 한국을 방문하여 평생 수집해 둔 『신한민보』와 대한인국민회, 공립협회, 대동보국회 등의 독립운동 관련 자료들을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하여 독립운동사 연구에도 일조하였다.
양주은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사이프러스 공동묘지[Cypress Lawn Cemetery]에 부인과 함께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양주은의 공적을 기려 1974년에 모란장을 수여했고, 1997년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