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Hyun Kyung Ah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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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顯景 |
영문 | Hyun Kyung Ah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미국 하와이주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881년 3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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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출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거주|이주지 | 미국 하와이주 |
활동지 | 미국 하와이주|중국 상하이 |
원어 항목명 | Hyun Kyung Ahn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안현경(安顯景)은 이승만(李承晩)이 하와이에 이민한 후 추진한 출판, 교육, 종교 활동을 적극 후원하고, 1919년 3·1 운동 후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이승만의 요청으로 상하이에 파견되어 상임위원회 군무 위원 및 정무조사특별위원회 외교 분과 위원으로 활동하고, 서한 28통을 임시 정부 대통령 이승만에게 보내 미국에 거주하던 이승만이 임시 정부 사정을 알고 통치할 수 있게 도왔다. 단합된 독립운동을 위해 대한민족통일촉성회 결성 및 재미한족연합위원회와 주미외교위원부 출범에 참여하였으나, 나중에 동지회를 떠나 하와이 대한인국민회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03년 하와이로 노동 이민하여, 국권 회복 운동을 위해 결성된 신민회가 1903년 말 카우아이섬 지회 설립 때 참여하였다. 1909년 4월 오아후섬 와히아와(Wahiawa)에서 결성된 국민회의 지방회장으로 선출되어, 7월 하와이 대표자들과 함께 일왕에게 일본 강제 합병 항의문을 발송하였다.
1913년 2월 이승만이 하와이에 이민한 후 추진한 1913년 9월 1일 창간한 『태평양잡지』, 1914년 4월 발간한 『한인교회보』, 1916년 11월 한인여학원, 1918년 12월 한인기독교회에 참여하여, 이승만이 추진한 출판, 교육, 종교 활동을 적극 후원하였다. 1919년 3·1 운동 후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이승만의 요청으로 7월 11일 ‘원동(遠東) 시찰 겸 통신원’으로 선임되었고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는 안현경을 월봉 50달러를 받는 하와이 대표 위원으로 임명하고 상하이로 파견하였다. 1919년 9월 14일~1920년 6월까지 상하이에 머물면서 임시 의정원에 참여해 상임위원회 군무 위원 및 정무조사특별위원회 외교 분과 위원으로 활동하고, 총 28통의 서한을 임시 정부 대통령 이승만에게 보내 임시 정부 상황과 주요 인물 동정, 국내외 소식과 연락망 구축 등에 대하여 보고하고 그 방안 등을 건의하였다. 이 보고는 미국에 거주하던 이승만이 임시 정부 사정을 알고 통치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1921년 6월 29일 임시 정부와 임시 정부 대통령 이승만을 적극 후원하는 대한인동지회를 창설하고 하와이 대한인교민단에서 총무 겸 『국민보』 주필로 활동하고, 1923년 12월 교민들의 금주와 금연을 장려하기 위해 한인교풍회를 만들어 활동하였다.
1928년 2월 16일 독립운동을 위해 단일 기관을 만들 목적으로 호놀룰루에서 대한민족통일촉성회가 결성될 때 집행 위원으로 참여하고, 1933년 1월 24일 이승만의 국제연맹 대상 외교 활동을 적극 후원하였다. 1937년 7월 중일 전쟁 발발 후 하와이의 대한인국민회와 동지회 간 합동 운동을 추진할 때 교섭 위원으로 활동하였고, 1941년 4월 20일 호놀룰루에서 해외한족대회를 개최할 때 동지회 중앙부를 대표해 참석해 재미 한인 사회의 단합된 독립운동을 추진하였다. 1943년 12월 동지회가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서 탈퇴하자 반발하여 동지회를 떠나 하와이 대한인국민회에 입회하였다. 사망시기는 미상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안현경의 공적을 기려 1995년 건국 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