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Hyeong Gak K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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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亨珏 |
영문 | Hyeong Gak Kim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미국 캘리포니아주 델라노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879년 6월 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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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미상 |
추모 시기/일시 | 2011년 |
출생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황해도 신계군 고방면 와골리 |
활동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델라노시 |
원어 항목명 | Hyeong Gak Kim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일제 강점기 미국 캘리포니아주 델라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형각(金亨珏)은 1937년부터 대한인국민회 델라노지방회 실업 위원을 지내고, 1943년 이후 구제 위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한 애국지사이다.
부인 김성진(金聖眞)과 사이에서 김계철(金溪喆), 김계춘(金溪春), 김계선(金溪善) 세 아들과 김계신(金溪新), 김계순(金溪順) 두 딸을 두었다. 둘째 아들 김계춘은 미국 육군 비행단 참위로 참전한 유고슬라비아 전선에서 총탄을 맞아 중상을 입고 치료 중 사망하였다.
1879년 6월 9일 황해도 신계군 고방면 와골리(新溪郡 古坊面 瓦汨里)에서 아버지 김성유(金成裕)와 어머니 문씨(文氏)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1921년 다뉴바 지방에 특별 외교비 의연금 20달러를 지원하고 구미위원부 재정을 지원하였다. 1928년 캘리포니아주 중부 델라노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였다. 1930년 6월에 델라노에서 개학한 태극국어학교의 재정을 연조하였다. 1936년에 흥사단에 입단하고 1936년 12월부터 1938년까지 대한인국민회 델라노지방회에서 실업 위원, 집행 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1943년부터 구제 위원이 되어 활동하였다. 델라노 지방에 거주하며 재미 한인 사회와 독립운동을 위한 많은 독립 의연금을 출연하였다.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던 1946년 5월, 유고슬라비아 전선에 참전한 아들을 찾는 기사를 하와이 『국민보』에 실은 것으로 보아, 그 때까지 생존한 것으로 보이나 사망시기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김형각의 공적을 기리어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