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Susannah Wesley Ho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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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Susannah Wesley Hom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시 카이리 스트리트 1117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건립 시기/일시 | 1903년 4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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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918년 |
현 소재지 |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시 카이리 스트리트 1117 |
원소재지 |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시 노스 스쿨 스트리트 70 |
원어 항목명 | Susannah Wesley Home |
원어 주소 | 1117 Kaili St, Honolulu, HI 96819, USA |
영문 주소 | 1117 Kaili St, Honolulu, HI 96819, USA |
성격 | 교육시설 |
1903년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지역에 감리교 여선교회가 조성한 이민자 자녀 교육 시설.
수산나 웨슬리 홈(Susannah Wesley Home)은 감리교 여선교회가 미국 하와이 지역 이민자 자녀들을 위해 조성한 교육 시설이다. 설립 초기에는 일본인 이민자 자녀들이 대부분이었지만, 1906년부터 한인 이민자 자녀를 받아들이면서 1913년 무렵에는 30명 정도가 되었다. 주로 여자 아이를 맡아 영어, 바느질, 가사 일 등을 가르쳤고, 부모가 없는 여자 아이를 양육하였다. 간혹 오갈 데 없는 성인 여자도 잠시 머물 수 있게 하였다.
수산나 웨슬리 홈은 호놀룰루 리버 스트리트(River st.)의 교회 내, 카이리 스트리트(Kaili st.) 1117, 칼리히(Kalihi) 지역 노스 스쿨 스트리트(North School Street) 70 등에 있었다.
엘라 홀부룩(Miss Ella Holbrook)은 1899년 감리교 선교부[National Methodist Woman's Home Missionary Society]가 보낸 500달러를 가지고 호놀룰루 리버 스트리트에 있는 교회[현 해리스 감리교회의 전신]에서 일본 여성 이민자들에게 영어와 재봉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이후 1903년 4월에 칼리히 지역 노스 스쿨 스트리트 70번지에 일본인 여자아이들을 기숙시킬 수 있는 작은 집을 마련하고,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를 기념하여 ‘수산나 웨슬리 홈’이라고 불렀다. 첫 해에 35명이 살았는데 대부분 어린아이들이었고 서너 명의 성인들도 있었다. 한 달 기숙비는 5달러 50센트였다.
한인 여자 아이들은 1906년부터 받아들여졌고, 간혹 오갈 데 없는 성인들도 잠시 머물 수 있었다. 『신한국보』 1909년 10월 12일 기사에는 19명의 한인 여자아이들이 수산나 웨슬리 홈에 살면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내용이 실려 있으며, 『국민보』 1913년 11월 15일 기사에는 한인 여학생이 30명으로 증가하였고, 일본인 여학생은 단 2명뿐이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1913년 9월에는 이승만(李承晩)이 한인기숙학교 교장으로 임명되면서 여학생의 입학을 허용하였는데, 당시 한인기숙학교는 남학생들을 위한 시설이었기 때문에 여학생들을 한동안 수산나 웨슬리 홈에 머물도록 하였다.
수산나 웨슬리 홈은 1918년에 54명의 여자아이를 수용하는 국제 기숙사가 되어 좀 더 넓은 땅을 사서 큰 집을 짓게 되었다. 1922년에는 11개 민족 56명의 여자아이들이 살았고, 1930년부터는 한인을 포함한 기숙생들의 수가 줄어들기 시작하여 1940년대에는 24명만 남게 되었다. 이후 1955년에 문을 닫았고, 1957년에는 웨슬리지역회관으로 변경되었다.
수산나 웨슬리 홈의 간판은 3개국의 언어로 쓰여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일본어로는 ‘日本婦人及小兒’로, 한국어로는 ‘한국부인과녀아긔숙’으로, 영어로는 ‘Susannah Wesley Home & Training School for Japanese & Korean Women & Children’로 표기되어 있다.
수산나 웨슬리 홈의 간판은 현재 웨슬리지역회관에 보존되어 있다.
수산나 웨슬리 홈은 당시 한인 이민자들이 자녀들 중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의 교육을 더 우선시하던 상황에서 여자아이의 교육을 장려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