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하와이 한인 직업 분포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문헌/문서
지역 미국 하와이주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정의

1910년의 하와이 초기 이주 한인들의 직업 분포.

개설

1910년 9월 13일차 『신한민보』에 실린 기사 내용에서는 “하와이 전체 농장 노동자 44,048명 가운데 한인 노동자 수는 1,787명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무직일 것이므로 모든 문제가 이들로부터 나온다.”라고 지적하였다. 1910년 인구 조사에 의하면 하와이에 거주하는 한국인 수는 4,533명이며, 그 가운데 14세 미만 아이들을 제외하면 대략 4,000명이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연령에 속하였다. 다른 통계 자료가 전무하고 하나의 기록물로 통합된 한인 업소록도 존재하지 않지만, 1909~1910년 『신한민보』 기사와 광고, 그리고 하와이 영토 주소록 등을 통해 초기 하와이 한인들의 직업 형태를 단편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다.

구성/내용

1907년 발간된 하와이 영토 주소록에는 상업에 종사하는 한인 8명, 마차 부리기 서비스업 1명, 통역관 1명이 기록되어 있었다. 1909년 2월 12일 『신한민보』에는 한인의 상업 광고 3개가 실렸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안원규의 양복점이었다. 그 외에 지금의 화물 취급사와 비슷한 공익 취집사 광고와 정기운이라는 자가 킹 스트리트에서 운영하는 해동여관에 관한 광고였다. 1909년 9월 7일 자에는 광제국이라는 약방 광고가 실렸다. 주인은 유성수이고 한의사 이동호가 함께 근무하였다. 1909년 11월 6일자에는 이규년의 시계 수리점 개업 광고가 실렸다. 1910년 하와이 영토 주소록에는 총 56명의 한인 이름이 수록되어 있다. 양복점[5], 목수[2], 상점 직원[9], 여관업[2], 식료품점[2], 농장 서기[6], 잡화점[4], 막노동자[5], 제조업[1], 세탁소[1], 요리사[3], 구두 제조[1], 꽃방[1], 정원사[2], 신문사·교사·목사 등 전문인[8]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신한민보』하와이 영토의 주소록이 자발적으로 가입하거나 광고하는 것이기에 당시 하와이에 살던 한인들을 모두 대표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이를 통해 당시 하와이 초기 이민 한인들의 직업이 농장 노동자에서 벗어나 점차 다양화되고 한인들이 하와이 사회에 안정적으로 적응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이덕희, 『하와이 이민 100년: 그들은 어떻게 살았나?』(중앙M&B, 2003)
  • 『신한민보』(1909. 2. 12, 1910.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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