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Hemet Incide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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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Hemet Incident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시 헤밋 밸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13년 6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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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 장소 |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카운티 헤밋 밸리 |
원어 항목명 | Hemet Incident |
191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카운티 헤밋 밸리 지역에서 재미 한인 농부들이 현지 주민들에게 쫓겨난 사건.
1913년 6월 27일 영국인 시몬의 살구 농장에 고용된 재미 한인 농부 11명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헤밋 밸리(Hemet Valley) 지역에 도착하였다. 재미 한인 농부들을 일본인으로 오인한 지역 주민들이 재미 한인 농부들을 내쫓았고 대한인국민회에서 현지인과 교섭하여 사건을 해결하였다.
헤밋 사건은 당시 일본인 노동자들에 대한 현지인의 배척이 심했던 상황에서 재미 한인 농부들을 일본인으로 오인하여 발생하였다.
헤밋 사건 발생 후 당시 일본 영사 누마누가는 재미 한인 농부들을 방문하여 미국 정부와 교섭하여 배상을 받아 주겠다고 제의했지만 재미 한인들은 이를 거절하였다. 이후 대한인국민회 북미 지방총회에서 현지인들과 교섭하여 타협한 후 사건을 해결하였다.
대한인국민회 회장 이대위는 미국 국무장관인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에게 “미주 한인들은 일본 국민이 아니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헤밋 사건에 개입할 자격이 없다. 이 사건은 한인들이 스스로 해결할 것이니 그것을 인정해 달라.”라는 서신을 보냈다. 1913년 7월 2일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이후부터 재미 한인과 관계되는 일은 공적, 사적인 것을 막론하고 일본 정부나 일본 관리를 통하지 않고 재미 한인 사회와 직접 교섭할 것이라고 하였고, 사건은 종결되었다.
헤밋 사건을 계기로 재미 한인은 일본의 식민 국민이 아닌 한국인으로서 인정받게 되었고, 대한인국민회는 재미 한인을 대표하는 비공식 대표 기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