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역사/근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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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미국 하와이주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11년 9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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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 장소 | 미국 하와이주 |
1911년 9월 11일 하와이 주재 일본 영사의 밀정 역할을 하던 재미 한인 최순용을 이상린이 응징한 사건.
1905년 을사보호조약 이후 일본 정부는 해외 영사들을 통해 점증하는 해외 동포들의 반일 감정 및 동태를 노골적으로 정탐하고 간섭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은 1910년 한일 합병 이후 더욱 노골화하였다. 일본이 이처럼 해외 동포들의 동태나 생활을 정탐하려 했던 까닭은 두 가지이다. 세계 각국에 한국 및 한국인은 물론 해외에 거주하는 동포들까지 일본의 관할 아래 있다는 점을 선전하기 위한 것이 하나였다. 동시에 한국 및 한국인을 지배 통제하는 지배자로서 자신들의 체면을 고려한 조처였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 중 하나가 하와이 주재 일본 영사의 밀정 최순용의 정탐사건이었다.
하와이에 거주하던 최순용은 한인 사회의 제반 사건이나 한인들의 동태 등을 탐지하여 일본 영사에게 보고하던 ‘밀정’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인지한 대한인국민회가 1911년 8월 5일 최순용을 초치 구금하여 조사하였다. 그 결과 영악한 성품의 최순용이 일본 영사가 건네는 금전에 혹하여 한인 사회의 실정이나 제반 문제들을 일본 영사에게 보고하고 있었음이 낱낱이 드러났다. 죄상을 자백하고 눈물로 회개하는 최순용의 모습을 보고 대한인국민회는 향후 밀정 노릇을 그만둔다는 다짐을 받고 돌려보냈다. 그렇지만 최순용은 여전히 일본 영사의 밀정 노릇을 계속하였고, 1911년 9월 11일 이상린(李相麟)이 최순용을 칼로 찔러 응징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최순용 정탐사건은 재미 한인 사회의 단결심을 강화시키는 동시에 친일 행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반일 운동이 격화되는 결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