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가주 대한인시국대회

한자 北加州 大韓人時局 大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43년 12월 12일
정의

1943년 12월 1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향후 독립운동의 방침을 적극적인 군사 활동 후원에 두고 군사 운동비 모금 활동을 한 대회.

개설

북가주 대한인시국대회(北加州大韓人時局 大會)는 태평양 전쟁 발발 후 재미 한인 사회의 각급 단체가 연합된 한족연합위원회의 주도로 1943년 12월 12일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되었다. 북가주 대한인시국대회에서는 카이로 선언 이후 조국의 독립 가능성이 국제적으로 공식 거론된 것을 바탕으로 향후 독립의 희망을 보다 구체적으로 갖게 되었음을 확인하고, 독립을 실현할 수 있는 방안으로 태평양 전쟁 중 적극적인 군사 활동 후원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12월 12일 1차로 군사비 100만 달러 모금을 계획하여 즉석에서 2,000달러의 예약금을 모금하였다.

역사적 배경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자 재미 한인 사회에서는 재미 동포의 안녕 모색과 더불어 미국의 일본 공격에 군사적 역량의 지원을 모색하였다. 1943년 12월 1일 카이로 선언에서 전후 조국의 독립에 대한 천명이 있은 후 재미 한인 사회의 활동이 보다 구체화되었다. 재미한족연합위원회는 1943년 12월 3일 시국 문제를 협의하기 위하여 대한인국민회, 민족혁명당 미주 총지부, 대한여자애국단, 동지회 대표 등이 모인 가운데 군사 운동을 강화하기로 의견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경과

북가주 대한인시국대회의 군사 운동비 모금 활동은 이후 미국 내 다른 지역의 한인 사회로 확산되었다. 포틀랜드와 시애틀 동포 합동 회의에서 3,000달러, 로스앤젤레스 시국 문제 토론회에서 2,000달러를 모금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의의와 평가

재미 한인 사회 차원의 재미 독립운동의 방향이 상하이 임시 정부에 대한 지원 차원에서 더 나아가 본격적인 전시 군사 운동으로까지 전개하여야 한다는 인식의 확산을 가져왔다.

참고문헌
  • 김원용, 『재미 한인 50년사』(혜안, 2004)
  • 홍선표,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연구: 1941~1945」(한양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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