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Korean Commission Certificate of Indebtedne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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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Korean Commission Certificate of Indebtedness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미국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원어 항목명 | Korean Commission Certificate of Indebtedne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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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미국 서부지역 한인들의 구미주차한국위원부 발행 국채 매입 운동.
구미주차한국위원부에서 발행한 독립국채권은 당시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김규식이 미주위원부 위원장으로 연서한 국채 증서이다. 판매 금액으로 미국 내 한국 홍보처의 재정을 지원하고 독립운동 홍보에 사용할 목적으로 총 500만 달러 상당의 국채가 발행되었다. 한국위원부뿐만 아니라, 미국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던 국민회 역시 임시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모금에 참여하였다. 국민회는 1920년 4월 기관지 『신한민보』를 통해 독립 공채에 대한 내용을 알리고 모금에 들어갔다. 곧이어 국민회 산하 로스앤젤레스·새크라멘토·윌로우스·맥스웰 등의 지방회에서 모금 운동이 일어났다.
국채권 발행은 상해 임시 정부 지원이나 독립운동의 대전략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한국위원부에 필요한 자금 모금과 미주에서의 독립운동 홍보에 목적을 둔 것이었다.
1919년 9월부터 발행된 국채권 증서는 대통령 이승만과 미주위원부 서재필 의장의 연서로 되어 있다. 그리고 서울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를 미국이 승인하면 연리 6%를 가산하여 지불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워싱턴 한국위원부의 국채권 발행은 1920년 대한인국민회를 통해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민 초기부터 많은 한인들이 살던 하와이와 미국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조직된 국민회 산하 여러 지방회들은 1920년 4월 13일자 『신한민보』의 「정부 재정 개발에 관한 일」이라는 기사를 통해 국채권 매입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6월 11일 이러한 열기를 확인한 한국위원부는 김규식이 직접 샌프란시스코로 건너와 공채 모집 홍보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뉴욕에서는 900달러가 모였으나 6월 15일 로스앤젤레스에서 3,425달러, 샌프란시스코에서도 1,915달러가 모금되는 등 서부 지역 한인 사회의 국채권 매입 활동은 그 기세가 맹렬하였다. 새크라멘토에서는 30명의 회원이 4,360달러를 납부하였으며, 윌로우스 2,600달러, 맥스웰 4,650달러 등 많은 액수의 모금이 북미 서부 지역 한인 사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