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Pacific Commercial Advertis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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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Pacific Commercial Advertiser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지역 |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창간 시기/일시 | 1856년 7월 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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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간|종간 시기/일시 | 1921년 |
원어 항목명 | Pacific Commercial Advertiser |
1856년부터 1921년까지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시에서 간행된 지역 신문.
『퍼시픽 커머셜 애드버타이저(Pacific Commercial Advertiser, PCA)』 신문은 1856년 7월 2일에 발행을 시작하여 1921년에 폐간된 하와이 지역 영문 일간지이다. 이 신문을 통해 하와이 이주 한인들의 삶의 애환과 역경 속에서도 참고 견디며 현지에 적응하는 생활상과 사회상를 살필 수 있다.
『퍼시픽 커머셜 애드버타이저』는 1900년대 초반 한반도 정세와 일본 제국주의 움직임에 관한 기사를 꾸준히 실었다. 1905년 을사조약, 1907년 헤이그 특사, 군대 해산에 관한 내용도 찾아볼 수 있다. 1905년 7월 17일자, 1905년 10월 16일자에는 하와이 한인들을 대표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독립 청원서를 제출했던 윤병구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1909년 10월 26일자에서는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 소식을 전하며 안중근 의사를 ‘신원 미상의 한국인 애국자[unknown Korean patriot]’라고 표현한 것이 눈에 띈다.
초기 한인 관련 기사를 살펴보면, 1904년 2월 19일자에는 2월 16일 대시라은행의 한국어를 구사하는 테일러 직원이 에바 농장에서 한인들에게 구타를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이와 관련된 한인 9명이 현지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기사가 있다. 1915년 5월 31일자에는 밀스 학교에 재학중인 이복실 학생이 대학 신입생 장학금을 받았고 졸업식에서 학생 대표로 연설하였다는 내용을 기사화했다.
『호놀룰루 애드버타이저』로 이름을 바꾼 뒤 1953년 9월 18일자에는 하와이 보건국이 에모리대학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은 김유택 박사를 나병 환자 주치의로 임명했고 이후 27년간 하와이에서 일반 진료를 했다는 내용을 기사화했다.
1921년 신문 소유주 로린 앤드루스 서스턴(Lorrin Andrews Thurston)은 『퍼시픽 커머셜 애드버타이저』를 『호놀룰루 애드버타이저(Honolulu Advertiser, HA)』로 개명했다. 이후 『호놀룰루 애드버타이저』는 로키산맥 서쪽 지역에서 발간하는 신문사 가운데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언론사 가운데 하나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1980년대까지 60년 동안 하와이 지역 신문 시장을 놓고 『호놀룰루 스타 불레틴(Honolulu Star Bulletin, HSB)』과 경합을 벌이기도 하였다. 2010년 2월 『호놀룰루 스타 불레틴』은 『호놀룰루 애드버타이저』의 소유권을 사들였고, 2010년 6월 두 개의 신문사는 『호놀룰루 스타 애드버타이저(Honolulu Star Advertise, HSA)』라는 이름으로 합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