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The Young Korean Military Schoo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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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人小年兵學校 |
영문 | The Young Korean Military School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지역 | 미국 네브래스카주 헤이스팅스시 노스 터너 애비뉴 800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개교 시기/일시 | 1909년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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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시기/일시 | 1914년 |
최초 설립지 | 미국 네브래스카주 헤이스팅스시 노스 터너 애비뉴 800 |
원어 항목명 | The Young Korean Military School |
원어 주소 | 800 N. Turner Ave., Hastings NE 68901-7696, USA |
영문 주소 | 800 N. Turner Ave., Hastings NE 68901-7696, USA |
성격 | 한인 군사 학교 |
설립자 | 박용만 |
1909년 미국 네브래스카주 헤이스팅스 지역에서 박용만의 주도로 설립된 미주 지역 최초의 한인 군사 학교.
한인소년병학교의 설립 목적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장기적인 독립 투쟁에 대비해 서방의 최신 군사 교육을 통하여 우수한 핵심 장교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재외 동포가 많은 극동으로 이들을 보내 광복군을 조직하려는 목적이었다. 훈령병들은 평상시에는 농사를 짓다가 유사시에 병사로 탈바꿈하는 둔전병(屯田兵)이 됨으로써, 일본과 대전하여 국권을 지키고자 하는 장기적인 목표도 가지고 있었다. 둘째는 문약한 한민족을 바로잡고 민족 운동을 펼쳐나갈 튼튼한 기초와 이론을 겸비한 의욕적인 새 지도자들을 훈련하는 것이었다.
한인소년병학교는 1909년 6월 초 개신교도들이 많은 미국 중서부 네브래스카주에서 하기군사훈련학교의 일종으로 재미 한인들이 세운 것이다. 20세기 초 네브래스카주의 교육은 그 주도권이 사립 대학교에서 등록금이 비교적 싼 주립 대학교로 넘어가고 있었다. 아울러 교육열이 높아지면서 네브래스카주의 중·고등학교 등록금이 면제되었고, 한인 학생들에게는 공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특히 군사학에 관심이 많았던 한인들은 군사 교육을 실시하던 공립 고등학교와 간부 후보생 훈련 과정을 의무화하였던 주립 대학교에서 근대식 군사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
한인소년병학교의 첫 여름 생도들은 모두 13명이었으며 14세부터 50세까지 연령층이 다양했다. 설립 첫해에는 대여섯 명의 교사가 전부였으나, 곧 학교 소식이 교회와 재미 한인 사이에 널리 퍼지고 사람들이 모이면서 마지막 해인 1914년에는 열 명 이상의 교사가 다양한 과목을 지도하였다.
커니 농장에서 시작한 한인소년병학교는 1910년 헤이스팅스대학 구내로 장소를 옮기고 1914년까지 6년 동안 존립하였다. 한인소년병학교는 설립자인 박용만(朴容萬)[1881~1928]이 1912년 네브래스카대학을 졸업한 후 하와이 『신한국보』 주필로 초빙되어 가면서 생도 수가 줄고, 생도 모집도 어려워지면서 폐교된 것으로 짐작된다.
한인소년병학교는 다른 무관 학교와 마찬가지로 일과와 학과 공부가 규율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소대 및 중대도 편성되어 있었다. 일과는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시작되었으며, 가장 더운 오후 3시부터 2시간 반 동안 군사 훈련이 진행되었다. 매일 아침 5시간씩 헤이스팅스대학에서 제공한 땅을 경작하며 경비를 마련하였다. 또한 생도들에게는 휴식과 오락 시간이 하루에 1시간만 주어졌다.
한인소년병학교에는 후일 독립 전쟁을 지휘할 지도자들에게 필수적인 군사학과 조련은 물론, 조국 근대화와 민족 운동에 도움이 되는 교과목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교과목은 생도 수와 교사 수가 증가함에 따라 몇 차례 개편되었다. 마지막으로 알려진 것으로는 국어국문·영어영문·한어한문·일어·수학·역사·지리·과학·성서·병학이 편성되어 있었다. 한인소년병학교가 민족의식으로 무장한 독립군 장교 양성에 주력하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