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부인회

한자 韓人婦人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성격 여성사회단체
설립자 양제현
정의

1917년 3월 2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시에서 양제현을 중심으로 조직된 여성 단체.

개설

1903년부터 시작된 초기 이민의 시기에는 여성들의 수가 적었던 관계로 재미 한인 여성들의 사회단체 활동이 미약하였다. 1910년부터 1924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951명의 한인 여성이 하와이에서, 그리고 115명이 미주 본토에서 사진 신부로 혼인하여 이주하게 되면서 점차 재미 한인 여성 단체 결성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1917년 3월 29일에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지역에 있던 부녀자들이 모여 한인부인회가 조직되었는데, 초대 회장은 양제현이 맡았다.

설립 목적

한인부인회의 설립 목적은 대한인국민회의 각종 사업을 후원하며 가정에서 일본 제품의 사용을 배척하기 위해서 조직되었다.

변천

『신한민보』에 따르면 1917년 7월 4일 로스앤젤레스의 사이캄머그로부 공원에서 독립기념일을 맞이하여 40명의 부인회 회원들이 야외 유희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데 “4번째 부인의 연설이 1등하였다.”라는 기사 내용이 있다. 이로부터 추측해 보면 당시 부인회에서는 연설 대회도 개최한 것으로 보인다.

1919년에 들어서면, 3.1 운동의 영향으로 인해 미주 지역에서도 독립운동의 방향과 역동성이 재편되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북미주 지역의 각 부인회를 통합하기 위한 움직임이 새크라멘토의 한인부인회와 다뉴바의 신한부인회를 중심으로 5월 18일에 일어났다. 이에 따라 1919년 8월 2일 각지의 부인 대표자들이 다뉴바에 모여 발기 대회를 가지고서 통합을 결의하였다. 이때 참석한 부인회는 다뉴바의 신한부인회, 로스앤젤레스부인친애회, 새크라멘토의 한인부인회, 샌프란시스코한국 부인회, 윌로우스의 지방부인회 등이다. 마침내 1919년 8월 5일에 대한여자애국단을 결성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한인부인회대한인국민회의 각종 사업에 대한 지원과 가정에서 일본 제품 사용을 반대하는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아울러 여성 사회 단체로서 가령 미국의 독립기념 행사를 통해서 연설 대회 등을 개최하는 등 한국의 독립운동과 관련된 활동을 전개했다.

의의와 평가

대한인부인회는 단체의 존속 기간은 짧았지만, 여성의 사회 참여가 드물었던 당시 미주 한인 사회에서 독립운동과 관련된 한인 여성 사회단체로서 의의가 컸다.

참고문헌
  • 김원용, 『재미 한인 50년사』(혜안, 2004)
  • 『북미주 한인의 역사』(국사편찬위원회, 2007)
  • 『신한민보』(1917. 7. 12)
  • 독립기념관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http://oversea.i815.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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