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부인구제회

원어 항목명 The Korean Ladies Relief Society
한자 韓人婦人救濟會
영문 The Korean Ladies Relief Society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미국 하와이주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19년 3월
해체 시기/일시 1949년 1월
최초 설립지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시
원어 항목명 The Korean Ladies Relief Society
성격 여성 독립운동 단체
설립자 손마리아|황마리아 등 하와이 각 지방 부인 대표 41명
정의

1919년 3월 미국 하와이주에 설립된 재미 한인 여성 독립운동 단체.

개설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는 1913년부터 동포 자녀의 국어 교육 장려, 일화(日貨) 배척, 교회와 사회단체 후원 및 재난 동포 구제 등을 목적으로 조직된 대한인부인회[회장 황 마리아]가 있었지만 그 활동은 미미했다. 1919년 3·1 운동의 영향을 받아 1919년 3월 15일 손(孫) 마리아와 황(黃) 마리아하와이 각 지방 부인 대표 41명이 호놀룰루에 모여 독립운동 후원을 결의하고, 1919년 3월 29일 2차 대회에서 한인부인구제회를 결성하면서 동포 여성들의 독립운동 후원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한인부인구제회대한부인구제회, 대한여성구제회라고도 불렸다.

1928년 이승만이 경상남도 의령 출신 이극로를 멸시했던 사건을 계기로 한인부인구제회에서 영남부인회가 따로 분열되어 나갔고, 1930년에는 교민단동지회 간의 충돌로 인해 재차 분열되었다. 그렇지만 1949년 1월 분열 문제를 극복하고 대한부인국민회로 재출범하는 혼란 과정을 겪었다. 대한부인국민회는 호놀룰루에 중앙부를 두고 라나이(Lanai)섬과 오아후(Oahu)섬에 지방회를 두었으며, 박금우, 승정한, 김차순, 심영신, 박에스더, 김아지, 박정금 등이 중앙부장을 역임했다.

설립 목적

한인부인구제회의 설립 목적은 하와이 부녀 사회의 독립 역량 강화, 독립운동 후원금 모금 및 모국 동포 구제 사업, 항일 독립을 위한 외교 선전 후원 등이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한인부인구제회는 1919년 3월 설립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후원금을 보냈고, 만주 대한군정서와 대한독립군 총사령부에도 군인 구호품을 보냈으며, 중경(重慶)의 한국광복군 편성 후원금도 지원했다. 그뿐만 아니라 3·1 운동 당시의 사상자 및 애국지사 가족도 지원하는 등 모국에 재난이나 변고가 있을 때마다 기독교청년회나 동아일보사, 조선일보사 등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후원하였다. 한인부인구제회 회원들이 조국 독립 및 애국 애족 사업에 지원한 돈은 무려 20만 달러를 상회했다고 전해진다.

의의와 평가

한인부인구제회하와이 각 지방 동포 여성 단체들이 통합되어 재미 한인 여성들의 독립운동 후원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참고문헌
  • 『미주 한인 이민 100년사: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서』(한미동포재단·미주 한인이민 100주년 남가주 기념사업회, 2002)
  • 김원용, 『재미 한인 50년사』(혜안, 2004)
  • 김창범, 『미주 한인 이민 100년사』(코람데오, 2004)
  • 홍선표, 『자주 독립과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재미 한인의 꿈과 도전』(연세대학교 출판부,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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