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공동회

한자 韓人共同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미국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30년
성격 독립운동 단체
정의

1930년 국내 학생들의 항일 독립운동을 지원할 목적으로 미국에 설립된 재미 한인 독립운동 단체.

개설

한인공동회는 1929년 11월 광주 학생 운동의 영향을 받아 1930년에 설립된 미주 지역의 항일 독립운동 단체 가운데 하나이다. 20세기 초 북미 한인 공동체에서 가장 큰 규모의 단체였던 대한인국민회는 1920년대에 들어서자 급격히 쇠퇴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광주 학생 운동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각 지역의 한인회에서는 대한인국민회를 대신할 새로운 단체를 조직하여 조국의 항일 독립운동을 후원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즉, 한인공동회는 광주 학생 운동의 영향을 받아 미국 각 지역마다 자발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1930년 1월 27일에 미국 뉴욕(New York)의 한인공동회가 설립되었고, 1930년 2월 3일에는 시카고(Chicago) 한인공동회, 2월 9일에는 나성[Los Angeles] 한인공동회, 디트로이트(Detroit) 한인공동회, 그리고 3월 8일에는 중가주 한인공동회 등이 차례로 설립되었다. 서부 지역의 한인 공동회나성 한인공동회와 중가주 한인공동회가 있었다. 나성 한인공동회김종림 등이 주도하였으며, 중가주 한인공동회는 김형순, 김호 등이 주축이 되었다.

설립 목적

한인공동회가 설립될 당시의 목적은 국내의 항일 학생 운동을 후원하는 것이었다. 각 지역의 한인공동회는 사실상 개별적으로 활동을 전개했지만, 국내 독립운동을 지지하기 위한 후원과 선전 활동을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것은 공통적이었다.

변천

서부 지역에서 나성 한인공동회와 중가주 한인공동회는 만주사변이 계기가 되어 통합의 필요성이 제기되자 1931년 12월에 미주 한인연합회의 결성에 참여한다. 김호는 1931년 10월 17일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후원과 역량 집중을 위한 재미 한인 연합회 조직을 제안하였고, 국민회 총회장 백일규와 의견 일치를 보았다. 1931년 11월 9일에는 두 단체의 이름으로 미주 한인연합회 발기문을 공표하였으며, 12월 5일부터 7일에 걸쳐 국민회, 나성 한인공동회, 중가주 한인공동회, 묵경자성단이 연합하여 조직을 구성하고, 선언서, 규칙, 결의안 등을 제정하고 설립을 공표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미국 서부 지역 한인공동회의 활동 사항은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이는 설립과 동시에 만주사변으로 인해 연합회로 변환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이다.

의의와 평가

한인공동회는 침체되어 있는 한인 연합 단체의 부흥을 모색한 것이 아니라 조국의 독립을 열망하는 지역 한인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단체이다. 이후 다시금 한인 연합 단체의 결성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문헌
  • 최봉윤, 『미국 속의 한국인』(종로서적, 1983)
  • 『한국사 50: 전시 체제와 민족운동』(국사편찬위원회, 2001)
  • 『북미주 한인의 역사』(국사편찬위원회, 2007)
  • 홍선표, 『자주 독립과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재미 한인의 꿈과 도전』(연세대학교 출판부, 2011)
  • 정병준, 「김호의 항일 독립운동과 정치 활동」(『한국민족운동사연구』43,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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