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역사/근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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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미국 하와이주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성격 | 농장주단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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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사탕수수농장주연합은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필요한 새로운 노동 인력을 한국인 이주 노동자들을 유치하여 충당하는 제반 업무를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조직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주들의 연합회이다. 하와이에서는 1850년대부터 사탕수수와 파인애플 플랜테이션이 본격화하면서 노동력 부족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고, 1876년부터 중국인 노동 이민자들을 유치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와이 이주 중국인 노동자 수가 5,000여 명에 육박하면서 이들 중 다수가 농장을 떠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고, 미국 의회는 1882년 「중국인 배척법」을 제정하여 중국인 이민을 금하였다. 대신 1885년부터 일본인 노동자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여 1900년에 하와이 지역의 일본인 노동자 수가 6만여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일본인 노동자들이 빈번한 파업과 함께 세력화하게 되자 한국에서 새로운 노동력을 받아들이기 위해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주연합이 결성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한국인 이주 노동자 유치와 관련된 제반 사무를 위해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주연합이 유지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설립 시기와 함께 해체 시기도 정확하게 확인되지는 않는다.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주연합은 문제를 야기한 중국인 및 일본인 노동자들을 대체할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 인력을 한국인 이주 노동자들을 유치하여 충당하고, 그 관련 제반 업무를 위한 농장주들 차원의 유기적인 협력과 연대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할 한국인 이주 노동자들의 유치와 관련된 사업과 업무를 수행하였다. 1902년 찰스 비숍을 대표로 하여 서울에서 노동자 유치 교섭을 시작하였고, 당시 주한 미국 공사 호러스 알렌의 중개로 고종 황제의 승인을 받아 노동자 모집을 시작하였다. 특히 미국 감리회 선교사 존스의 주선에 크게 힘입어 어렵사리 하와이 이민 노동자 102명[남자 54명, 부인 21명, 자식 25명, 통역관 2명]을 모집했고, 안질 등 신체검사 불합격자를 제외한 86명을 1차로 호놀룰루를 향해 출발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주연합은 하와이 노동 이주 한인의 유치를 통해 한인의 하와이 농업 노동 이민사의 시작을 가능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