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역사/근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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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미국 뉴햄프셔주 포츠머츠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설립 시기/일시 | 190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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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외교사절단 |
1905년 미국에서 포츠머스 강화회의 개최 시 조선의 독립과 관련하여 외교 활동을 했던 재미 한인 대표단.
1905년 7월 9일 러일 전쟁 후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가 포츠머스 강화회의 개최[1905년 8월 10일~1905년 9월 5일]를 공포하자 고종 황제는 이승만과 호머 헐버트(Homor Hulbert)를 한국 사절단으로 파견했다. 하와이에서는 7월 12일에 포와 임시공동회를 열어 윤병구 목사에게 한국 특명전권공사 자격으로 한국 사절단과 함께 포츠머스 강화회의에 참석하도록 추진했다.
고종 황제는 포츠머스 강화회의 개최 공포 후 한국의 독립을 존중해 달라는 내용의 호소문을 작성해 이승만과 호머 헐버트를 포츠머스 강화회의 한인대표단으로 회담장에 참석하게 했다. 또한 조선의 독립이 위기에 처했음을 인식하고 있었던 미국 한인 사회에서는 외교 활동을 벌이고자 윤병구 목사를 대표 자격으로 포츠머스 회담장에 파견했다.
윤병구는 이승만에게 연락해 동반 활동을 제의하고, 7월 14일 미국 육군 장관 태프트(William Howard Taft)를 만나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날 수 있는 소개장을 받았다. 또한 호놀룰루 주재 일본 총영사 사이토 미키[齋藤幹]도 만나 미국 주재 일본 공사관 히오키 에키[日置益] 서기관 앞으로 보내는 소개장도 받았다. 그러나 이승만과 호머 헐버트, 윤병구 목사는 포츠머스 강화회의 회담장에 참석 받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으며, 미국인 호머 헐버트는 고종의 편지를 전한 것으로 인해 위험에 처했다.
윤병구와 이승만은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오이스터 베이에 있는 새거모어 힐(Sagamore Hill)로 가 8월 4일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 포츠머스 강화회의 개최 시에 한국의 주권과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조정해 달라는 내용의 「하와이 거주 한인들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드리는 청원서[Petition from the Koreans of Hawaii to President Roosevelt]」를 제출했다. 그러나 이미 일본 측에 한국의 보호국화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일본과 비밀 조약을 체결했던 루스벨트 대통령은 워싱턴의 미 국무성을 통하지 않은 문서라는 이유로 청원서를 돌려주면서 형식적인 인사를 하고 대화를 마쳤다. 이에 포츠머스 강화회의는 한국을 보호국화하려는 일본의 의도대로 종결되었다.
윤병구와 이승만이 1905년 포츠머스 강화회의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 청원서를 제출한 것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 접견에 관해서 『뉴욕타임스』는 “대통령이 워싱턴의 미 국무성을 통하지 않은 문서들은 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주 워싱턴 한국 공사관으로부터 탄원서의 인준을 받을 것을 윤병구와 이승만에게 충고했으며, 이들은 일요일이나 월요일에 다시 돌아와 대통령과 대화를 이어 나가겠다고 말하면서 워싱턴으로 출발했다.”라고 보도했다. 이를 통해 윤병구와 이승만의 외교 활동이 당시 조선의 상황을 미국 사회에 알리는 데 기여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같은 외교적 노력이 재미 한인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재미 한인들의 활동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