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구락부

한자 朝美俱樂部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미국 하와이주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5년 12월 16일
성격 재미 한인 친목단체
설립자 오웬|서진수|손승운
정의

1925년 미국 하와이주 오아후섬 와히아와 지역에서 한미 간의 친목과 상업 장려를 위해 설립된 재미 한인 단체.

개설

조미구락부는 1925년 12월 26일 하와이 오아후섬의 와히아와에서 오웬[吳雲, Cloud Owen]·서진수(徐珍洙)·손승운·송승균(宋承均)·이보국(李輔國)·임성우(林成雨)·최선주(崔善宙)·현도명(玄道明) 등을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조미구락부는 한미 양국의 상호 친목 및 한인 2세들의 상업을 장려하기 위한 단체였다.

설립 목적

설립 목적은 재미 한인 1세와 미국에서 태어난 재미 한인 2세 간의 친교 및 상업을 장려하고 한국인의 민족정신과 미국 시민으로서 충의를 도모하여 한미 간의 친목과 복리를 증진하는 것이었다.

변천

1928년 8월 4일에 와히아와 시내에 조미구락부 상점을 열었으며, 사교를 위하여 회관과 해변에 별장까지 설립했다. 조미구락부는 가입 회비 100달러와 매월 1달러의 비싼 회비와 실업부에서 운영하는 수익금 등으로 협회를 운영하였다.

1930년대 미주 지역의 항일 통합 운동 단체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1933년 4월 9일 동지회를 비롯하여 임시정부후원회·대조선독립단·동생회·조미구락부·와히아와 공동회가 참여하여 한인연합협의회를 조직하고 15개조의 규칙과 『협의회보』를 발간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조미구락부 회원은 1930년대 중반의 경우 200~300명에 달했다.

그러나 1943년 5월에 오웬이 사망한 후로 조미구락부의 활동은 쇠퇴하였다. 1945년에 부흥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1950년대에 들어서는 명맥만 유지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조미구락부는 청년부, 실업부, 친목부라는 크게 3개의 부로 조직되어 활동을 했다. 주요 활동으로 한인 1세대와 2세대 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장례 예식, 호상 제도를 운영했다. 아울러 「조선 국가」·「조선 국민가」·「부모 은덕가」 등의 곡조를 배포하여 하와이를 비롯해 미국 본토는 물론 남미 지역에 있는 한인 단체와 교회, 국어 학교 등으로 보내 동포들의 민족의식을 배양하도록 했다.

의의와 평가

조미구락부가 결성되었던 당시는 국민회, 동지회 등으로 하와이 한인 사회의 애국 단체들이 파벌을 나눠서 갈등을 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조미구락부에서 활동한 이들은 파벌이나 경쟁 구도 없이 순수한 목적으로 참여했다. 조미구락부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성격의 단체로, 재미 한인의 사교와 친목, 그리고 한미 양국 간의 복리 증진에 중심을 둔 단체였다.

참고문헌
  • 김원용, 『재미 한인 50년사』(혜안, 2004)
  • 『죽사 안창호 선생 자료집』(안형주, 죽산 안씨 문화연구회, 2012)
  • 『신한민보』(1943. 5. 20, 1945. 2. 21, 1956.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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