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愛國同盟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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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10년 7월 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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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독립운동 단체 |
1910년 7월 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에서 각 지방의 민중 대표자가 조직한 독립운동 단체.
1910년 7월 3일 애국동맹단은 동포 전체가 일치하여 일본을 민족의 원수로 정하고 대항 행동을 취하기로 맹약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된 9개조의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이와 함께 애국동맹단의 한일 강제 병탄 반대 외교와 선전은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가 담당하고, 군인 양성 사업은 국민회(國民會)가 애국동맹단을 창설하던 시기에 군인 양성을 목적으로 별도로 조직했던 대동공진단(大同共進團)에 일임하기로 하였다. 군인 양성 사업은 각 지방에 양성소를 설립하고 청년 동포로 하여금 의무적으로 병식 훈련을 받게 하고 경비는 동포들의 특별 연금으로 충당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한국과 상호 조약을 체결한 9개국에 일본의 만행을 알리고 한국과 체결한 조약상의 의무를 지켜줄 것을 요청하기로 하였다. 1910년 7월 6일에는 이 결의안에 따라 대동공진단의 명의로 합병 실행의 거부와 함께 취소를 촉구한다는 전보를 순종(純宗)과 일왕에게 각각 보냈다. 아울러 전체 단원들에게 합병 실행을 막기 위한 외교적 선전 활동 및 군인 양성의 필요성을 촉구하였다. 또한 국내 동포들의 비참한 실정을 알리는 선전문을 만들어 구미 각지 언론 기관에 발표하여 국제 여론을 환기하고, 선전 대회 개최를 통한 동포의 애국정신 고취와 함께 군사 인재 양성 사업에도 착수하였다.
애국동맹단의 활동은 이후 미주 한인무관학교 설립의 계기로 작용하였고, 재미 한인 사회의 무장 항일 노선의 이정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