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Asiatic Exclusion Leag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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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Asiatic Exclusion Leagu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설립 시기/일시 | 1905년 5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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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항목명 | Asiatic Exclusion League |
성격 | 반일단체 |
1905년 5월 1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에서 미국인이 일본계 이민자를 배척하기 위해 설립한 반일 단체.
1904년 러일 전쟁 이후 캘리포니아 지역으로 일본인 이민이 급증하자 미국인의 반일 감정도 고조되었다. 1905년 5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시안 배척연맹[Asiatic Exclusion League]이 결성되어 대중적으로 일본인 배척을 결의하였다. 일본과의 협정이 체결 목적과 다르게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1800년대 중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 반일 운동의 중심지였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과 일본 이민자를 배척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러일 전쟁 이후 미국에서는 일본인 배척을 결의하였지만, 제1차 세계 대전의 시작과 함께 캘리포니아인의 반일 감정은 일시적으로 주춤했다. 그러나 1918년 종전과 함께 캘리포니아 전역에 걸쳐 반일 운동이 재개되었다. 전후 캘리포니아에서 일어난 반일 운동의 주된 원인은 신사협정[Gentlemen's Agreement]이 원래의 목적에 부응하지 못하고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 데에 있었다. 일본인을 배척하려는 의도와는 달리 도리어 일본인 이민자의 수가 증가하고, 사진 신부가 도래했으며, 여기에 일본인의 현저한 경제적 상승이 복합적으로 결부되어 재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캘리포니아인의 반일 운동은 초당파적인 성격으로 통합되었다. 이는 1921년 캘리포니아의 샤키 결의문에서 일본인을 전체적으로 배척한다는 내용에 구체적으로 표명되었다.
일본인 배척 운동으로 시작되었지만 1907년 3월 초 루스벨트 대통령은 ‘「행정명령 589」’를 공포하여 하와이, 멕시코, 캐나다 등을 경유하여 미국으로 입국하려는 일본인 및 한인 노동자들의 이민을 금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