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동맹신흥회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07년 11월
해체 시기/일시 1910년
성격 독립운동 단체
설립자 이정실|김익제|박용태|장한조|김정식|오창덕|김복희 등
정의

1907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시에서 재미 한인의 친목 도모와 항일 독립운동을 위해 설립된 단체.

개설

시애틀 동맹신흥회는 1907년 11월에 이정실·김익제·박용태·장한조·김정식·오창덕·김복희 등을 중심으로 발기하여 조직된 단체이다. 초대 회장은 이정실이 맡았다. 애국 운동의 일환으로 결성된 동맹신흥회는 얼마 후 미주 지역의 독립단체 통합 운동의 분위기 속에서 불과 4년 만에 국민회로 흡수되었다.

설립 목적

시애틀 동맹신흥회는 재미 동포 간의 상호 친목을 도모하며,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지원하기 위해서 설립되었다.

변천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조국의 비극적인 현실에 분개한 재미 한인의 애국 열정을 통해서 미주와 하와이 각 지방에 수십 개 단체가 조직되었다. 1907년 시애틀 지역을 중심으로 결성된 동맹신흥회는 1908년 7월 8일부터 11일까지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하와이한인합성협회와 미주 본토의 공립협회 그리고 대동보국회, 뉴욕공제회와 함께 애국동지대표회라는 모임을 가졌다.

1909년 7월 말에는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와 통합하여 협회를 유지했다. 그러나 결국 시애틀 동맹신흥회는 계속된 독립 단체 통합 여론에 의해서 1910년 2월에 국민회와 통합하게 된다. 이에 국민회는 1910년 5월 10일 협회의 명칭을 대한인국민회로 개칭하여 명실상부 미주 한인의 최고 통일 단체로 결성되었다.

의의와 평가

시애틀 동맹신흥회는 1905년 을사조약과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 속에서 분개한 재미 한인들의 애국심으로 설립된 단체로, 미주 본토 지역과 하와이의 독립단체 통합운동으로 4년이라는 짧은 기간 존속했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 자료집』8(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 방선주, 『재미 한인의 독립운동』(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1989)
  • 『신편 한국사』47(국사편찬위원회, 2001)
  • 김원용, 『재미 한인 50년사』(혜안, 2004)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콘텐츠(http://contents.koreanhistory.or.kr)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