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The League of Friends of Korea in San Francisc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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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The League of Friends of Korea in San Francisco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19년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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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 |
원어 항목명 | The League of Friends of Korea in San Francisco |
성격 | 친한 단체 |
설립자 | 정한경 |
191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에서 국제 사회에 한국인의 독립 열망과 일제의 만행을 알리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
샌프란시스코 한국친우회는 1919년 정한경이 중심이 되어 서부 지역의 친우회 활동에 대한 관심 속에서 설립된 단체이다. 서재필이 국제 사회에 조선의 독립 열망과 일제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 한국친우회를 설립한 데서 비롯되었다.
샌프란시스코 한국친우회는 미국 사회에서 조선 독립에 대한 국제 사회의 우호적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미국의 한국친우회는 1919년 5월 친한파 혹은 지한파 미국인을 통해 조선 독립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호적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서재필 등이 조직하였다. 한국친우회는 본부 격이었던 필라델피아 친우회를 비롯, 1921년 미국 각지에 21개소, 영국과 프랑스 각 1개소 등이 조직되었으며 회원은 2만 5천명에 이르렀다는 주장도 있지만, 대부분 학자들은 회원 수가 1만 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친우회가 3·1운동 이후의 한국 실상을 효율적으로 국제사회에 알려 한국 독립을 지지하는 우호적 친한 여론 조성에 크게 기여하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한국친우회의 활동은 미국 중부와 동부에 집중되어 있었고, 서부 지역에서의 활동은 상대적으로 미미하였다. 그렇지만 당시 캘리포니아 재미 한인들이 서재필의 방문을 거듭 요청하고 있었던 사실 등을 볼 때 서부지역 한인들도 친우회의 활동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음은 확실하다. 그래서 1919년 10월 11일 정한경이 중심이 되어 샌프란시스코 한국친우회를 출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출범 당시 샌프란시스코 한국친우회 조직은 회장에 맥아피 목사, 부회장에 바로우스 박사, 서기에 그로스 교수 등을 선임하는 한편, 10명으로 구성된 평위원회를 두었다. 그리고 특별히 재미 한인 8명과 미국인 22명으로 구성된 친우회 후원회를 조직하였다.
샌프란시스코 한국친우회 출범 상황에 대해 1919년 10월 30일자 『신한민보』는 “샌프란시스코 한인친우회 조직-미주 서방에서 처음 보는 성황”이라고 전하였다.
샌프란시스코 한국친우회 또한 미국 각지에 설립되었던 한국(인)친우회와 마찬가지로 한국 실상을 미국 사회에 알려 한국을 지지하는 친한 여론 조성에 크게 기여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