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北美實業株式會社 |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미국 캘리포니아주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12년 |
---|---|
해체 시기/일시 | 1929년 |
최초 설립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
성격 | 주식회사 |
설립자 | 김인수|송종익|안창호|임준기|조성환 |
191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재미 한인들이 주도하여 동포의 단합과 재정 마련을 위하여 설립한 기업.
북미실업주식회사는 1912년 1월 캘리포니아주의 재미 한인들이 김인수, 송종익, 김종혁, 조성환, 김기만, 정원도, 임준기, 손양선, 강번, 안창호 등을 발기인으로 하여 설립된 주식 회사이다. 국권을 상실한 직후여서 한국의 독립 회복과 재미 한인들의 장래를 위해서 실업을 일으키는 일이 시급하다고 보았고, 재정적 역량이 미약한 상태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주식 회사로 출범하는 방법을 취하였다. 발기 회의 후 자본금 총액 4만 5000달러를 목표로 하여, 매주 300달러씩 3년 예정으로 주식 모집을 시작하였다. 1918년 자본 총액 5만 달러, 매주 10달러 5천 주로 하여 주식을 모금하였으며, 1919년 3월 자본 총액은 8만 달러, 총자본 20만 달러로 증가하였다.
1920년 대홍수로 인한 농업 가격 폭락, 윌로우스 벼농사 3만 달러 투자 손실, 콩 재배 농사에 1,500달러 투자 손실, 귤밭 임대 사업의 손실, 1920년 상하이 구국모험단 폭탄 실험 폭발 처리 후원금 관련 소송 비용 부담 등으로 회사 운영에 대해 동포들의 외면을 받게 되었다. 흥사단이 회사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악화된 재무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였다. 회사 자금은 15%로 축소되어 버렸으며, 1929년 11월 한 주당 15센트씩 배당한 후 해산되었다.
북미실업주식회사는 로스앤젤레스 흥사단 본부에 사무실을 두었으며 주로 흥사단원들과 대한인국민회원들이 주주로 참여하였다. 회사가 번성하였던 1917년 무렵 회사 임원진은 사장 임준기, 총무 송종익, 재무 정봉규, 이사원 정봉규·임준기·송종익, 감사원 조성환·계옥룡 등이었다. 1918년 멕시코를 방문한 안창호에 의해 멕시코 한인들의 참여가 이루어졌고, 1919년 주주로 참여한 동포가 255명으로 늘어났다. 북미실업주식회사의 주식금은 주로 한인 농업에 투자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채를 매수하기도 하였으며 일본 상품 배척 운동과 함께 미주 사회에서 한인 사회 상호 실업 장려와 경제적 실력 양성을 목표로 물산 장려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회사 운영에 대한 일체의 사항은 정기 주주 총회에서 보고되었고 재정 출납 사항을 『신한민보』에 게재 공표하였다.
북미실업주식회사는 북미 지역 한인들이 국권을 상실한 조국의 장래를 위해 일으킨 실업 운동의 소산이며, 경제 활동을 기반으로 항일 애국 운동과 독립운동의 후원 역할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