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대한인국민회

원어 항목명 North-America Korean National Association
한자 北美大韓人國民會
영문 North-America Korean National Associati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 제퍼슨 블러바드 1368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36년
해체 시기/일시 1960년대
최초 설립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 제퍼슨 블러바드 1368
원어 항목명 North-America Korean National Association
원어 주소 1368 Jefferson Blvd., LA, CA, USA
영문 주소 1368 Jefferson Blvd., LA, CA, USA
성격 독립운동 단체
설립자 김호|이살음|송헌주|최진하|송종익|한재명|한승곤|김성권|임치호|김병연|이영수|김창만|안석중|김종림|임지성|정지영|윤병희|손승조|김탁|홍언|이순기|임준기
정의

1936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에 설립된 독립운동 단체.

개설

1929년 광주 학생 운동을 계기로 1930년부터 북미 각 지역에 공동회(共同會)가 설립되었으나, 각 지역 중심의 분산적인 활동에 그쳤다. 1936년 5월 각 지방의 대표자들이 모여 대한인국민회의 부흥을 모색한 결과 북미 대한인국민회가 결성되었다.

설립 목적

북미 대한인국민회는 조국의 독립을 위한 활동을 조직적으로 구성하고 지원하기 위해 중앙 조직의 성격을 지닌 대한인국민회를 부흥시킨 것이다.

변천

북미 대한인국민회의 전신인 대한인국민회 총회는 1922년부터 재정 문제로 인해 중앙 행정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1929년 광주 학생 운동이 미주 한인 사회에 알려지면서 1930년부터 북미 각 지역에 공동회가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김호[김형제상회]는 북미 각 지역 중심의 분산적인 활동을 통합하고자 1936년 5월17일에 각 지역 대표자들을 소집하여 대한인국민회의 부흥 대책을 협의하였다. 각 지역의 대표자들은 1936년 7월 5일에 대의회를 열어 항일 운동과 임시 정부 재정 후원, 대한인국민회의 명칭 유지, 청년 운동과 노년 구제 사업, 총회관 건축 등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임시 의정원에 대한인국민회의 명성이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으므로 명칭을 그대로 사용할 것을 건의하여 허가받았다. 북미 대한인국민회는 1937년 1월 1일부터 이전의 회장 제도 대신에 집단 지도 체제인 위원 제도로 운영되었고, 본부를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이전하여 제퍼슨가[1368 Jefferson Blvd., LA]에 본부 건물을 신축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북미 대한인국민회는 각 지역에 분립된 단체들을 통합하여 한인 사회의 부흥을 모색하고, 항일 운동과 임시 정부 재정 후원, 청년 운동, 노년 구제 사업 등을 실시하였다. 또한 북미 대한인국민회는 학생 양성소를 운영하여 한인 유학생들을 양성하였고, 대한인국민회의 기관지인 『신한민보(新韓民報)』를 지속적으로 발간하여 국내외에 배포함으로써 항일 의식을 고취하였다. 그리고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종결되고 조국이 해방되기까지 지속적으로 상해 임시 정부를 지원하였으며, 미주 한인의 권익을 보호하는 활동을 펼쳤다. 특히 미일 전쟁 때는 외교 사업과 국방 후원 및 동포들의 전시 안녕에 전력하였고 광복군 편성에도 지대하게 공헌하였다. 진주만 기습 이후 일본인과의 분리 필요성이 높아지자 북미 대한인국민회에서는 재미한족연합회 증서를 전체 동포에게 발행하기도 하였다. 조국이 해방된 후에는 남북 분열의 상황에 직면하여 1953년 11월에 또 한 번 헌장을 수정하게 되었다. 제3조의 강령 내용에 교육과 구제, 경제 발전은 공통 과제이지만, 자유세계 민주주의 민족들과 제휴 병진함, 공산주의와 그 정책을 배척함, 민주주의에 위반되는 반동 세력과 독재자를 반대함, 국가의 안녕을 소란하는 전쟁 조장자를 배척함 등이 새롭게 기재되었다.

현황

북미 대한인국민회는 1960년대 무렵에 조직과 기능이 상실되었다. 하지만 북미 대한인국민회로스앤젤레스 본부 건물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었다. 1991년 로스앤젤레스시는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하여 국민회관을 ‘Korean Independence Memorial Building’이라는 이름으로 시사적지 548호로 지정하였다.

의의와 평가

북미 대한인국민회는 조국의 독립을 위한 활동뿐만 아니라 미일 전쟁으로 인해 피해 받는 재미 한인을 보호하기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해방 이후에도 북미 대한인국민회는 미국 한인 사회의 구심체 역할을 해 왔다.

참고문헌
  • 『미주 한인 이민 100년사: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서』(한미동포재단·미주 한인이민 100주년 남가주 기념사업회, 2002)
  • 김원용, 『재미 한인 50년사』(혜안, 2004)
  • 김창범, 『미주 한인 이민 100년사』(코람데오, 2004)
  • 『북미주 한인의 역사』(국사편찬위원회, 2007)
  • 이현주, 「도산과 초기 미주 한인 단체」(『한국독립운동사연구』31,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8)
  • 장규식, 「1900~1920년대 북미 한인 유학생 사회와 도산 안창호」(『한국근현대사연구』46, 한국근현대사학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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