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건제회사

원어 항목명 Reedley Dehydrated Products Co.
영문 Reedley Dehydrated Products Co.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들리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0년 9월
최초 설립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들리시
원어 항목명 Reedley Dehydrated Products Co.
성격 과일·채소 가공 판매 회사
설립자 김종림
정의

192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들리시에 재미 한인 김종림이 설립한 과일·채소 가공 판매 회사.

개설

192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중부의 리들리(Reedley)에서 김호를 중심으로 김종림·오충국·김탁·안상학·김일환·송헌주·전선용 등과 설립한 과일·채소 가공 회사이다. 독립운동 자금 마련에 필요한 경제적 기반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설립 목적

리들리 건제회사는 과학적 신식 기계를 사용하여 “각종 과일물과 채소를 건제하며 판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 회사의 자본금 총액은 2만 달러였고, 1주 주가는 100달러였으며, 매년 2월 주주 총회에서 배당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였다.

변천

1906년 마지막 하와이 이민선을 타고 하와이로 건너간 김종림은 사탕수수 농장, 유타주 솔트레이크 철도 건설 노동자, 소작농 등을 전전하였다. 김종림은 1912년경부터 프린스톤에서 벼농사를 시작하여 크게 성공, 재미 한인 사회에서 ‘쌀의 대왕’으로 불리기에 이르렀다. 그 후 김종림은 1920년 9월 과학적 설비를 갖추고 과일과 채소를 건제 가공해 유통 판매하는 리들리 건제회사를 설립하고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설립 당시 2만 달러의 자본금을 정하고 주식을 모집했는데, 1921년 4월 30일부터는 자본금을 4만 달러로 확대하였다.

리들리 건제회사김종림김형순과 함께 설립한 후 200여 명의 재미 한인 노동자를 고용하여 캘리포니아 일대에서 가장 큰 과일 농사를 지어 연 100만불 이상의 수익을 올릴 정도로 번성하였던 김형제 상회[Kim Brothers Company]로 발전하였다. 후일 국민회의 중도 개혁 세력으로 자리 잡았던 리들리그룹은 바로 이 리들리 건제회사를 매개로 하여 형성되었던 것이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리들리 건제회사는 캘리포니아 일대에서 생산되는 과일과 채소를 최신 기계 장비를 통해서 가공하여 상품화한 후에 중간 유통으로 판매하는 회사였다. 김종림이 사장, 오충국은 재무, 김호가 총무를 맡아서 회사 전반을 관리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행 군단 결성과 비행사양성소의 설립 및 비행 훈련, 광주 학생 운동 후원, 대한인국민회 국어학교 설립 후원금 모금, 조선의용대 후원, 북미지방동지회 기관지 『북미시보(北美時報)』 창간 등 항일 독립을 위한 김종림의 제반 사업의 경제적 기반은 리들리 건제회사의 설립과 성공, 발전이 그 출발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리들리 건제회사는 3·1 운동을을 계기로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 마련에 있어서 독립금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인식 속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따라서 리들리 건제회사의 설립은 항일 독립운동을 위한 제반 사업의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참고문헌
  • 김원용, 『재미 한인 50년사』(혜안, 2004)
  • 홍선표, 『재미 한인 독립운동의 표상, 김호』(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역사공간, 2012)
  • 이명화, 「재미 실업가 김종림의 생애와 독립운동」(『한국독립운동사연구』43,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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