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Korean National Associ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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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韓人國民會 |
영문 | Korean National Associati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10년 2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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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 |
원어 항목명 | Korean National Association |
성격 | 독립운동 단체 |
1910년 2월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에 미주 한인 사회의 통합 기관으로 설립된 단체.
미주 한인 단체의 통합 움직임은 1908년 3월 장인환·전명운 의사의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 처단을 계기로 본격화하였다. 1908년 11월 하와이 한인합성협회와 북미 대한인공립협회가 합동 발기문을 발표하고 통합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두 단체는 1909년 2월 1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미주 한인 사회의 통일 기관으로 ‘국민회’를 출범시킨 뒤, 기존의 공립협회를 국민회 북미지방총회로, 합성협회를 국민회 하와이 지방총회로 개편하였다. 그리고 1910년 2월 10일 대동보국회를 참여시켜 대한인국민회로 개칭함으로써 명실상부한 미주 한인 사회의 최고 대표 기관임을 자임할 수 있게 되었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해 강제 병탄을 당하자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와 북미 지방총회는 해외 한인의 최고 기관이자 무형 정부로서 기능할 중앙총회를 설립하기로 하고, 1911년 3월 중앙총회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중앙총회는 총회장 최정익과 부회장 한재명을 선출하는 데 그쳤다. 온전한 형태를 갖춘 중앙총회가 구성된 것은 1912년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북미·하와이·시베리아·만주 등 각 지방총회를 아우르는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제1차 대표원회가 소집되면서였다. 안창호·박용만·이대위·윤병구 등의 주도로 열린 대표원회는 제2대 중앙총회장으로 윤병구를 선출하고, 중앙총회를 해외 한인의 최고 기관으로 삼아 자치 제도를 실시한다는 「중앙총회 결성 선포문」[1912년 11월 20일자]을 발표하였다.
대한인국민회는 비록 국권을 상실한 국가였지만 미국 정부로부터 대한민국의 미국 대사관에 준하는 대표성을 인정받았고, 이후 상해 임시 정부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대한인국민회는 조국을 잃고 조국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디아스포라 집단으로 전락한 재미 한인들에게 정부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