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주당

원어 항목명 Korean Nationalist Democratic Party
한자 大韓民主黨
영문 Korean Nationalist Democratic Party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5년 5월
원어 항목명 Korean Nationalist Democratic Party
성격 독립운동 단체
정의

1945년 5월 말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에서 열린 미포(美布) 대회에서 미주 각지 한인 정치 세력들이 동지회를 토대로 조직한 정당.

개설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두고 1945년 4월부터 시작되었던 샌프란시스코회의가 끝날 무렵, 미주 각지의 동포 정치 세력들은 일본의 패전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동지회 북미총회 또한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945년 5월 말 7개 지방 대표가 참석하는 미포(美布) 대표대회를 로스앤젤레스에서 소집하고 조직명을 대한민주당으로 개칭하였다.

대한민주당은 조직명의 변화에 따라 정강 또한 새로 정리하였다. 대한민주당 정강 내용은 ① 본 당은 대한 민족의 절대 독립을 주장함, ② 본 당은 민주주의를 수립하여 이로써 정체를 건설함, ③ 본 당은 활민 운동으로 대한 인민의 자유와 생명을 보장함 등이었다.

9개조로 구성된 대한민주당 정책도 제시되었다. 그중 주목할 만한 것은, ① 임시 정부가 한국에 들어가 총선거를 실시하기까지 절대로 봉대함, ② 왜적의 불법 소유는 국유로 몰수하고 사유 재산은 종법(從法) 처결하기로 주장함, ③ 국제 평화를 위하여 한국 군병으로 일본을 경찰하기를 주장함 등이었다. 대한민주당의 이러한 정강과 정책은 원론적 주장에 그쳤던 것으로서 중국 관내 각 정당들은 말할 것도 없고, 조선민족혁명당 미주지부의 것과 비교하더라도 짜임새나 내용면에서 매우 빈약해 보인다. 특히 해방 후 새로운 국가 건설 과정에서 가장 첨예한 문제로 대두될 가능성이 큰 토지 개혁이나 친일파 처리와 관련한 문제 등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를 낳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전후 한국 문제에 대한 열강의 합의가 불투명했고, 동시에 국내 실정 또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치적 쟁점이 될 만한 문제에 대해서는 입장 표명을 유보했을 가능성이다. 둘째는, 새로운 국가 건설에 대한 동지회 중심 전망과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되지 못했을 가능성이다. 그렇지만 그 어느 쪽이든 동지회가 해방 이후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큰 의미를 갖는다.

설립 목적

대한민주당의 설립 목적은 정치·외교·군사 운동을 통해 광복 운동을 촉진하는 데 두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조직명의 변경 및 정강의 개정과 함께, 대한민주당은 동지회 하와이총회와 동지회 북미총회를 관할하는 중앙위원부를 만들어 동지회의 조직을 강화하고자 했다. 아울러 기준의 군사 운동과 독립금은 임시 정부로, 외교 운동비는 주미외교위원부로 보내서 활동을 계속 지원하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동지회의 정당 조직으로 전환은 결의만 되었을 뿐 실행에는 이어지지 못했다. 이유는 해방 후 귀국했던 이승만이 정파를 초월한 독립촉성중앙협의회의 회장으로 추대되면서 민족 지도자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동지회를 굳이 정당으로 바꿀 필요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의의와 평가

동지회 북미총회가 개최한 제1회 동지 미포 대회는 해방 후 독립국 수립을 위한 국내외의 정치 활동을 사전에 준비하는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자체 활동보다는 이승만의 향후 정치 활동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조치로도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의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 고정휴, 『1920년대 이후 미주·유럽 지역의 독립운동』(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홍선표, 『자주 독립과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재미 한인의 꿈과 도전』(연세대학교 출판부,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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