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조선국민군단

한자 大朝鮮國民軍團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미국 하와이주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14년 6월
해체 시기/일시 1917년
성격 항일 단체
설립자 박용만
정의

1914년 6월 미국 하와이주에서 박용만이 독립군 양성을 목적으로 만든 군사 교육 단체.

개설

대조선국민군단은 1914년 6월 미국 하와이 오아후(Oahu)섬 코올아우(Koolau) 지방 카할루우(Kahaluu)의 아후이마누(Ahuimanu) 농장에서, 박용만 등이 네브래스카주 헤이스팅스에서 시작한 한인소년병학교의 군사 운동 정신을 계승하여 미국 한인 사회에 항일 독립 전쟁의 필요성을 확산시키고자 만든 단체였다. 그러나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1917년 해체된 것으로 추정된다.

설립 목적

대조선국민군단은 재미 한인 사회에 항일 독립 전쟁의 필요성을 확산시키고, 독립군 부대의 지휘관을 양성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국민군단 군영 낙성식은 1914년 8월 29일에 이루어졌으며, 군단과 사관 학교 병력은 120~300여 명에 달했다. 그렇지만 군단과 사관학교 모두 1916년을 고비로 점차 쇠락하기 시작해 1917년경에는 해체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해체 원인으로는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과 미·일 간 우호 관계의 형성, 군단의 혁명적·군사적 성격에 대한 하와이의 비우호적 반응, 하와이 농장들의 불경기에 따른 둔전병제(屯田兵制) 운영의 한계, 1915년 하와이 대한인국민회의 실권이 이승만 측에 넘어가면서 박용만의 활동 범위가 위축되었던 점 등을 들 수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조선국민군단의 핵심 사업은 ‘산넘어병학교’라 불리는 사관 학교 설립을 통한 독립군 사관의 양성에 두어졌다. 국민 군단의 편성과 사관 학교 설립에 대한 제반 업무는 하와이 각지에서 군사 훈련을 계속 이어 오던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 연무부가 담당하였지만 이 사업을 주도한 주역은 군단장 박용만안원규, 박종수 등이었다. 특히 안원규박종수가 1,500에이커에 달하는 아후이마누 파인애플 농장을 기증하여 300~4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군영을 만들 수 있었다.

미국 하와이에서 외국인이 군영을 설치하고 군사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하와이 군사령부가 재미 한인들의 특수한 정치적 입장 등을 고려하여 묵인하였던 까닭에 교육이 가능하였다. 그렇지만 살상력이 강한 총기의 사용은 금지하였던 까닭에 목총으로 군사 교육을 하였고, 군단의 운영은 둔전병제를 원칙으로 하였다. 즉, 군인들은 군단에 기숙하면서 군사 훈련과 학습을 받고, 동시에 농장에 나가 노동을 하는 방식이었다.

의의와 평가

미국 하와이에서 재미 한인들이 군영을 설치하고 독립군 사관 양성을 위한 군사 교육을 실시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 노재연, 『在美韓人史略』(美洲羅城: 亞美利加印刷會社, 1951)
  • 윤병석, 『국외 한인 사회와 민족 운동』(일조각, 1990)
  • 김원용, 『재미 한인 50년사』(혜안, 2004)
  • 홍선표, 『자주 독립과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재미 한인의 꿈과 도전』(연세대학교 출판부, 2011)
  • 이덕희,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100년사』(연세대학교 대학출판문화원, 2013)
  • 박민영 외, 『기록으로 보는 재외 한인의 역사: 이주와 정착 그리고 발전의 시간들-아메리카』(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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