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大同保國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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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07년 3월 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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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시기/일시 | 1910년 5월 10일 |
최초 설립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 |
성격 | 독립운동 단체 |
설립자 | 장경|김우제|장인환 외 |
대동보국회는 모든 한국인이 대동 협력하여 군주와 나라를 보존한다는 목적 아래 2대 주의와 3대 강령을 제창하였다. 2대 주의란 세계 여론을 환기시켜 동양 평화를 지키는 것과 동포들을 단결시켜 한국의 안녕을 보전하는 것이었다. 3대 강령은 인민의 교육 진흥과 실업 발전, 자치의 시행이었다.
1905년 한일 합병 이후 일본의 조선 침탈이 가속화되면서 강력한 항일 구국 운동의 필요성이 고조되자 1907년 3월 2일 이병호, 장경, 김우제(金愚濟), 장인환, 문양목, 양주은 등이 중심이 되어 샌프란시스코 웹스터가에 중앙 총회관을 설립하고 대동보국회를 출범시켰다. 대동보국회는 1905년 12월 민족 교육 진흥을 목적으로 조직되었던 대동교육회를 확대, 개편한 것이었는데, 초대 회장에는 이병호, 총무에는 장경이 선임되었다. 대동교육회는 원래 일본의 침략으로 인한 위급 상황을 맞아 나라를 구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있지만 동시에 군주를 보호한다는 근왕(勤王)적 성격이 강한 단체였다. 근왕적 성격을 배제하고 만민 평등과 민주 정체를 종지로 삼았던 공립협회와는 성격이 달랐다. 그래서 대동교육회는 공립협회의 목적에 반대하여 설립된 조직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1908년 7월 8일부터 11일까지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하와이 한인합성협회와 미주 공립협회, 뉴욕 공제회, 시애틀 동맹신흥회 등 여러 단체들이 애국동지대표회라는 모임을 가질 당시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임이 개최되기 4개월 전인 3월에 장인환·전명운의 스티븐스 저격 사건이 발생했고, 이들의 재판 비용을 모금하면서 재미 한인들 사이에서 단결의 분위기가 형성되기 이르렀다. 이러한 결과로 1910년 5월 10일 여타의 재미 한인 단체와 공동으로 독립운동 연합 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마침내 8월에 대한인국민회[북미지방총회]로 재출범하였다, 대동보국회가 대한인국민회로 재출범하면서 기관지였던 『대동공보(大同公報)』도 국민회의 기관지 『신한민보(新韓民報)』에 흡수·통합되었다
대동보국회는 일반적 독립운동 단체와는 달리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한다는 기치와 동시에 군주를 보호한다는 근왕(勤王)적 성격이 강한 단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