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공진단

한자 大同共進團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미국 하와이주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10년 7월
해체 시기/일시 1914년 4월 15일
성격 독립운동 단체
정의

1910년 미국 하와이주 재미 한인들이 항일 전쟁 수행을 위한 군인 양성 목적으로 결성한 독립운동 단체.

개설

하와이에서 군인 양성 사업의 일환으로 대한인국민회 회원을 중심으로 조직된 군사 단체이다. 일본의 조선 침략이 노골화하면서 1910년 7월 5일 하와이 거류 한인들이 항일 독립 운동에 필요한 군인 양성을 위하여 단장 정원명, 재무 안원규, 서기 이내수, 외교원 민찬호 등을 선출하고 결성하였던 군사 훈련 조직이다.

한일 합방 후, 대동공진단은 독립 전쟁 수행을 위한 군인 양성 운동에 더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즉, 미주 본토의 독립운동 단체 애국동맹단과 공동으로 동포의 상무 정신을 고취시키고 군사 훈련을 장려하기 위하여 「무예 장려문」을 발표하고 『체조 요지(體操要旨)』를 발간하는 등 활동 영역을 넓혀 갔다. 대동공진단 군인양성소의 훈련 교관 및 단원 중에는 광무(光武) 군인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훈련 교관을 맡았던 광무 군인들은 1903년에서 1905년 사이에 하와이로 이주한 한인 노동자 7,200여 명 중에 섞여 있던 군인들이었다. 즉, 1904년 일본이 재정 문제를 내세워 1차로 한국군을 반감시킬 때 해산된 500여 명의 광무 군인이 하와이 이주 노동자에 섞여 있었던 것이다. 하와이 이주 몇 년 후 그들 중 일부는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미주 본토 각지로 흩어졌지만 나머지 300여 명은 하와이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국권 피탈이 현실화하던 1910년 무렵, 하와이 각지에 산재해 있던 광무 군인들은 조국 수호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한(恨)을 절감하면서 대동공진단 단원 혹은 훈련 교관이 되어 독립군 양성 훈련을 담당했다.

설립 목적

대한인국민회가 당시 하와이 지역에서 유행했던 숭무주의 및 군인 양성주의에 힘입어 항일 독립 전쟁을 수행할 군인을 양성하기 위해서 창설했다.

변천

1910년 7월 5일 재하와이 한인들이 조직하였던 군사 훈련 조직이 바로 대동공진단이다.

1910년 7월 6일 대동공진단애국동맹단과 연합하여 대한제국 황제와 일본 외무성의 데라우치 총감에게 전보를 보내 각각 합방 취소와 선전포고를 했다. 아울러 「무예 장려문」을 발표하여 재미 동포들의 무예 의식을 고취함과 동시에 『체조 요지』를 발행해 한인 청년들의 군사 훈련을 고무했다. 이러한 자극을 통해서 각지에 군인 양성소가 설립되었다. 1910년 5월에 이미 대한인국민회 산하 클레몬트 학생양성소에서 군사 훈련을 한 것을 비롯해서 1910년 6월에 롬폭에 의용훈련대가 조직되었고, 11월에는 캔자스(Kansas)에 소년병학원 등이 조직되어 군인 양성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그러나 대동공진단의 독자적인 활동 그 자체는 오래 존속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동공진단이 조직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인 1910년 8월 말경에 가와이섬 국민회 회장이었던 정칠래의 제의로 재미 한인들의 단합을 위해서 대동공진단을 국민회의 소속으로 하고 국민회 내에 연무부(鍊武部)를 조직할 것을 건의한 상태였다. 이 의견에 따라서 1910년 9월 초에 공진단 의사와 지방 대표자가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마침내 군인양성소 설립후 3개월 후인 1910년 11월이 되면 대동공진단이 군인양성소를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로 이관하게 되면서 대동공진단은 국민회 내 연무부로 귀속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대동공진단은 연무부와 그 운명을 같이하여, 1914년 박용만대조선국민군단을 창설함에 따라서 국민회의 연무부 사업이 정지되는 1914년 4월 15일까지 국민회의 연무부의 산하 단체로 활동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동공진단은 독립 전쟁을 위한 군인 양성 사업에 진력하기로 결의한 후 각 지방에 군인 양성소를 설립하는 동시에 청년 동포들은 의무적으로 군사 훈련을 받도록 호소하였다.

의의와 평가

하와이 거류 재미 한인들이 항일 독립 전쟁 수행 군인 양성을 위한 훈련을 시행했다는 점, 훈련 교관 중에 광무 군인들이 섞여 있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 노재연, 『在美韓人史略』(美洲羅城: 亞美利加印刷會社, 1951)
  • 윤병석, 『국외 한인 사회와 민족 운동』(일조각, 1990)
  • 김원용, 『재미 한인 50년사』(혜안, 2004)
  • 이덕희,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100년사』(연세대학교 대학출판문화원, 2013)
  • 독립기념관 한국 독립운동 정보 시스템(http://search.i815.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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