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 한인연합 중국후원회

한자 羅城 韓人聯合中國後援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38년 1월
최초 설립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
성격 독립운동 단체
정의

1938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의 재미 한인들이 중국을 후원하기 위해 조직한 독립운동 단체.

개설

중일 전쟁 발발 이후 북미 한인 사회에는 국민회 조직과 별도로 중국후원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나성 한인연합 중국후원회는 1938년 1월 로스앤젤레스에서 결성되어 활동한 독립운동 단체이다. 일본의 만주 침략 이후 한중 연대를 통한 항일 투쟁에 관심을 가진 재미 한인들이 결성한 이후 1940년까지 활동이 지속되었다.

설립 목적

나성 한인연합 중국후원회는 국민회나 동지회 등 기존 단체의 임원과 회원들이 중국인의 대일전 승리를 기원하며 중국을 후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발적으로 결성한 임시 단체이다. 중일 전쟁 발발 직후 국민회가 시국 문제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한다고 본 한인들에 의해 추진되었다.

변천

미국에서 중국후원회는 1937년 9월 12일에 뉴욕 한인연합 중국후원회가 결성된 것이 처음이었다. 나성 한인연합 중국후원회는 1937년 12월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한 뉴욕지방회 대표인 변준호의 주도 아래 1938년 1월 결성되었다. 1938년 5월 6일 임원 보선을 거치면서 회장 김윌라, 부회장 김강, 영문 서기 김옥자, 국문 서기 최능익이 선임되었다. 이 밖에 이경선·안석중·최영순·최봉윤·선우학원·곽림대·김혜란 등이 참여하였다.

이후 나성 한인연합 중국후원회는 1940년 5월 뉴욕과 시카고에서 활동한 중국후원회와 함께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연합회라는 이름으로 운영되었다. 이는 1942년 6월 30일 조선민족혁명당 미주총지부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나성 한인연합 중국후원회는 1937년 말부터 1938년 초까지 결성된 뉴욕 한인연합 중국후원회, 시카고 한인연합 중국후원회와 함께 일화 배척 운동과 후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8년 5월 13일 국민회 총회관에서 개최한 공개 강연회 때 최능익의 성과 보고에 따르면, 결성 이후부터 4개월 동안 일화 배척, 5,000개의 배일 단추 발매, 각종 배일 단체에 평균 월 1회의 연사 파견 등을 실시하였다. 또한 1938년 6월 10일에는 국민회 총회관에서 중국인 연사를 초청해 강연회를 개최하고 한국과 중국 민족의 공동 항일 투쟁을 다짐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의의와 평가

나성 한인연합 중국후원회는 매주 1번의 모임과 매월 공개 강연회를 개최하며 시국 문제를 토의했다. 1940년부터는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연합회에 통합되어 활동했으며, 조선민족혁명당 미주총지부로 단체를 확대하여 활동을 지속하며 항일 투쟁에 기여했다.

참고문헌
  • 홍선표, 「1930년대 재미 한인 사회의 진보적 변화와 대응: 중국 후원회 결성과 조선의용대 후원을 중심으로」(『한국민족운동사연구』85,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15)
  • 「뉴욕 재류 동포의 활동」(『신한민보』, 1937. 9. 23)
  • 「변준호 씨 뉴욕 도착」(『신한민보』, 1938. 5. 5)
  • 「나성 중국후원회」(『신한민보』, 1938. 5. 12)
  • 우리역사넷(http://contents.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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