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역사/근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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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42년 4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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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시기/일시 | 1943년 6월 13일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42년 9월 27일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42년 6월 28일 |
성격 | 재미 한인 군사 조직 |
설립자 | 재미한족연합위원회 |
1942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에서 조직된 재미 한인 군사 조직.
재미 한인들의 대일 전선 동참을 독려하는 동시에 미군을 후원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군사 조직이다.
1941년 12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일(對日) 선전포고를 접한 재미 한인 사회는 매우 고무되었다. 이에 적극적 독립운동의 방편으로 대일 전선에 직접 참여하고 동시에 미군을 후원한다는 두 가지 정책 방향을 설정하였다. 이에 따라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내에 국방과를 신설하고 12월 22일 한인국방군 편성 계획을 미 육군사령부에 제출하여 승인받았다. 이에 즉시 대원 모집을 시작하여 1차 지원자 50여 명을 캘리포니아 주경비군에 인계하였고, 다시 100명 이상의 지원자를 모집하여 부대를 편성함으로써 1942년 2월 15일 김용성을 사령관으로 하는 나성 한인경위대가 창설되었다.
부대 편성 직후인 1942년 2월 20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인준을 받았고, 3·1절 기념식 때 열병식을 거행하여 교포들을 감동시켰다. 그러나 경비대의 정식 발족은, 1942년 4월 26일 한국인·중국인·필리핀인 등 3국인 경위대와 함께 관병식을 거행하던 날 캘리포니아주 정부의 정식 인허를 받고 캘리포니아주 국방경위군 부속 군대로 편성되면서부터이다. 이때 맹호휘장 연대기를 받았다. 그래서 한인경위대를 일명 맹호군[The Tiger Brigade]으로, 그 대원들을 맹호 군인으로 불렀다. 당시 인허장 수여식에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간부를 비롯 많은 재미 한인들이 참석했으며, 캘리포니아 주지사, 로스앤젤레스 시장 등 내빈들도 다수 참석하였다. 1942년 5월 30일에는 상항(桑港) 한인경위대가 결성되면서 이 두 한인경위대를 통칭하여 나성 한인경위대[맹호군]라 칭했다.
1942년 9월 17일에는 집행부에서 한인경위대가 한국광복군의 일원으로 정식 편입되었음을 기념하기 위해서 2주년 한국광복군 성립 기념 축하식을 성대하게 거행하였으며, 군사 훈련과 전폭적인 재정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1942년 9월 27일에는 미국 동맹국승전행렬 행사에 참여해서 재미 한인을 대표하는 군사 조직의 위상을 재고시키기도 했다. 아울러 1943년 3월 31일에는 장개석의 부인이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하자 한인경위대가 직접 나서서 한국광복군 설립 당시 10만 달러라는 거액을 기부한 것에 대한 감사의 예를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1943년 6월경에 들어서자, 미군 육군 방침에 의거해서 나성 한인경위대는 물론이거니와 재미 한인경위대 전체가 군사 조직으로서의 권리를 상실하게 된다. 이로 인해 1943년 6월 13일의 전체 회의를 통해서 사실상 해산하는 것으로 결정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