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 포럼

원어 항목명 Friday Forum
영문 Friday Forum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37년 12월
최초 설립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
원어 항목명 Friday Forum
성격 토론 모임
설립자 변준호|이경선|김강
정의

1937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시에서 변준호, 이경선, 김강이 조직한 토론 모임.

개설

금요 포럼[Friday Forum]은 1937년 7월 중일 전쟁이 발발하자 변준호(卞俊鎬), 이경선(李慶善), 김강(金剛)이 주도해 조직한 단체이다. 국민회 회관에서 매주 금요일 토론회를 개최했다. 매주 금요일에 토론회를 개최한다고 해서 ‘금요 포럼’으로 불렀다. 미국 뉴욕에서 중국후원회를 만드는 데 앞장섰던 변준호로스앤젤레스로 이동한 후, 국내에서부터 변준호와 교류했던 김강과 이경선이 중심이 되어 한인 유학생과 지식인층을 대상으로 1937년 12월부터 토론회를 개최했다.

변준호는 1896년 경기도 양평 출생으로 1917년에 미국으로 이주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노동과 학업을 겸하고 흥사단에 입단해 활동했으며, 1930년대 초 시카고의 재미한인사회과학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미국 내 공산주의 운동을 시작했다. 이경선은 1899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났다. 흥사단의 국내 연장 조직인 수양동맹회에 가입하여 농촌 교화 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국내에서 목회자와 농촌 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일제의 감시와 탄압이 심해지자 1937년 6월 미국으로 이주해 중국후원회,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 활동에 참여하였다. 김강은 1901년 평안북도 용천 출생이다. 1928년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해 변준호와 이경선을 만나 금요 포럼을 조직한 후 로스앤젤레스를 거점으로 미주 한인 사회의 혁신 운동을 이끌었다.

설립 목적

중일 전쟁이 발발한 이후 급변하는 아시아의 정세와 시국 문제를 토론하고, 로스앤젤레스의 한인을 결집함으로써 반일 운동을 추진하고자 변준호, 김강, 이경선 등이 결성하였다.

현황

국민회 회관에서 토론하는 과정에서 로스앤젤레스 한인 지식인인 최능익, 김혜란, 안숙정, 곽림대, 최영순, 최봉윤, 선우학원 등이 금요 포럼을 지지했다. 그 외에 『신한민보』 주필 신두식도 금요 포럼에서 활동했다. 또한 금요 포럼이 주도하여 로스앤젤레스 중국후원회와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가 결성되었다.

의의와 평가

금요 포럼은 중일 전쟁 이후 새로운 정치 발전을 일깨우고 반일 운동을 효과적으로 추진하며 국민회의 조직력을 강화하는 데 앞장섰다. 금요 포럼의 참석자들은 시국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연구하는 한편 한인 사회의 변혁을 위해 노력했다.

참고문헌
  • 선우학원, 『아리랑 그 슬픈 가락이여: 미주 이민 90년을 맞으며』(대흥기획, 1994)
  • 고정휴, 『1920년대 이후 미주·유럽 지역의 독립운동』(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최기영, 「1930~40년대 미주 기독교인의 민족 운동과 사회주의: 이경선을 중심으로」(『한국 기독교와 역사』20,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4)
  • 홍선표, 「1930년대 재미 한인 사회의 진보적 변화와 대응: 중국 후원회 결성과 조선의용대 후원을 중심으로」(『한국민족운동사연구』85,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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