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Korean Pre-immigra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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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Korean Pre-immigrant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미국 |
시대 | 근대/개항기 |
원어 항목명 | Korean Pre-immigra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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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한인의 첫 공식 하와이 이민 이전에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이민자.
한국인 선(先)이민자란 1903년의 공식적인 하와이 첫 이민 이전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생활했던 한인들을 말한다. 1800년대 중반 암울한 정치·사회적 상황에서 발생한 유민들이 이에 속했다. 유민들은 주로 만주 지역으로 월강(越江)하여 이주하였으나, 일부는 적은 숫자지만 미국으로 이주한 기록이 남아 있다. 당시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인삼장수, 서재필·안창호와 같은 정치인, 그리고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재미 유학생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통하여 입국한 145명 중 인삼장수는 89명, 재미 유학생은 44명으로 도합 133명이었다.
재미 유학생 이민은 1940년까지 총 891명이었는데, 유학생 이민자들은 학업 수행이라는 일차적인 이민 사유를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항일 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미국에 들어온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인삼장수의 경우에는 대부분 캘리포니아가 목적지였지만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은 물론 보스턴·시카고·시애틀·뉴올리언스 등 대도시와 중국인 노동자들이 철도를 부설하는 중서부의 캠프, 심지어는 쿠바의 하바나에 간다는 인삼장수도 있었다. 자본력 있는 인삼장수들은 샌프란시스코에 광덕[Quong Tuck & Co.]이라는 합자 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광덕 회사에 출입하는 인삼장수들의 기록은 1900~1902년까지 계속 이어졌다. 미국에서의 한인 인삼장수들의 활약은 일본이 한국의 인삼 전매를 독점하면서 쇠약해졌다.
그런데 이 한인들은 공식적으로 ‘이민’으로 구분되지는 않았다. 최초의 공식적인 이민자로 등록된 재미 한인은 류 피터(Peter Ryu)이다. 류 피터는 1901년 미국 하와이주에서 등록하였다. 이어 1901년 5명의 한인 노동자가 이민으로 등록하였고, 1902년에는 12명의 한인 노동자가 이민으로 등록하였다.
한편 1903년 워싱턴 D.C.에서 발간된 『미국 통계청 월말 보고서』 연방 하원 기록 제10편[1092~1903] 4372쪽에는 1899년부터 1902년 사이에 미국에 이민 온 한인의 통계표가 있다. 이 통계표에 의하면, 1899년 남자 22명이 이민 왔는데, 14~44세가 17명, 45세 이상이 5명이었다. 1900년에는 남자 71명이 왔고, 1901년에는 남자 46명과 여자 1명이 들어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02년에는 남자 26명과 여자 2명으로 14세 미만이 1명, 14~44세가 23명, 45세 이상이 4명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어떤 경로를 통하여 미국에 이민을 왔고,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확하게 확인된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