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역사/근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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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미국 하와이주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1900년대 초 미국 하와이 초기 이민 한인들의 열성적인 자녀 교육열.
1900년대 초 미국 하와이 초기 이민 한인들은 어려웠던 이민 생활에도 불구하고 아들, 딸 구별 없이 교육을 잘 시키겠다는 일념이 매우 강하였다. 적은 수의 이민 민족 집단인 한인들이 우수한 전문 인력을 대거 배출한 것도 바로 교육을 중시한 이민 1세대들 덕분이었다. 1904년 9월 감리교 선교사 와드만이 처음으로 한인을 위한 학교를 만들었고, 1906년 9월 한인남학생기숙학교[Korean Boarding School for Boys]로 정식 개교했고, 1907년 초 하와이 정부의 공식 인가를 받았다. 이민의 역사가 더 오래된 중국인들이나 일본인들도 설립하지 않았던 한인들만의 자체 정규 학교였다. 하와이 초기 이민 한인들의 뜨거운 교육열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와이 초기 이민 한인들은 근처에 마땅한 학교가 없을 경우에는 기숙사가 있는 사립 학교에 자녀들을 보냈다. 1916년 사립 학교 학비와 기숙사비는 평균 60달러였다. 당시 농장 노동자들의 월급이 평균 24~30달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많은 액수의 학비는 큰 부담이었다. 그래도 자녀들의 학교 교육을 꺼리지는 않았다. 사탕수수 농장 한인들은 이미 1907년에 월급에서 50센트씩, 1달러씩 떼서 학비가 부족한 학생들을 도왔다. 학비가 모자라는 청소년을 위한 장학금을 조성한 것이었다. 하와이 초기 이민 한인들이 청소년 교육에 얼마나 힘썼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1907년 4월 하와이 힐로 지방에 세운 한인소학교를 시작으로 하와이 전역에 25개의 한글학교가 만들어졌다. 하와이 초기 이민 한인들은 정규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을 한글학교에도 보냈다. 한글 교육을 중요시 한 것은 국권 회복을 위함이었고, 자녀들에게 조국의 얼을 심어주려 한 것이었다. 이와 함께 일제 총독부가 만든 교과서를 쓸 수 없다며 따로 교과서를 만들어 쓰는 열성도 보였다. 한글학교들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야간에 어른들에게도 한글을 가르쳤다.
하와이 초기 이민 한인들이 뜨거운 교육열을 보여준 것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국권 상실의 설움을 겪으면서 민족의 무지를 일깨워야 한다고 자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와이 초기 이민 한인들에 있어 교육은 개인적 출세의 수단이 아니라 조국의 국권을 회복하는 길을 만들어 주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당시 신문들은 우리가 나라를 잃은 것은 국민이 무지했기 때문이며, 국권을 회복하려면 교육밖에 없다는 의미의 글을 구구절절이 만들어 계속 실었다. 하와이 초기 이민 한인들의 뜨거운 교육열은 한인 인구 대비 학생 수가 중국, 일본과 비교할 때 현저히 높았다는 점에서 다시 확인된다.
이민 후 5년 만에 한인들이 달성한 인구 대비 학생 수 비율에 중국인들은 무려 65년, 일본인들은 37년이나 걸려 도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