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역사/근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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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미국 하와이주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1910년대 미국 하와이 지역 사회가 재미 한인을 포함한 동양 소수 민족들의 이해와 화목을 장려하던 현상.
1903년 1월 13일에 102명의 한인 이민자가 호놀룰루항을 통해 하와이 땅을 밟게 되었다. 하와이 왕국이 멸망하고 미국의 영토로 편입된 지 3년째 되는 해였다. 그 후 1905년 8월까지 약 7,400명의 한인 이민자가 미국 정부의 이민 정책으로 하와이 영토에 도착하였다. 일단 하와이에 거주하는 모든 민족의 문화는 정부의 아무런 제재나 독려를 받지 않고 형성되었다. 다문화 형성 과정에서 뚜렷하게 촉진제가 되어 공헌한 기관은 YWCA, 호놀룰루 미술박물관, 상의회 등이 대표적이며, 또한 여러 축제와 퍼레이드 주관 단체 등 민간 기관도 공헌을 하였다. 이민 민족 자녀의 교육을 맡았던 사립 학교는 고유문화의 가치를 인식하고 각 나라의 문화 보급과 계승에 앞장섰다.
하와이 감리교회 선교회는 1905년 하와이 에와에 규모가 큰 한인 농장 교회를 설립하고 주중에 공부하는 학교도 처음으로 세웠다. 1910년대에는 농장 지배인 조지 렌튼(George Renton)이 한인들의 사탕수수 농장 파업의 동참을 막고, 한인 사회의 하와이 현지 적응을 돕고자 캘리포니아에서 아름다운 교회 첨탑을 구매하여 교회에 기증하기도 했다.
하와이주는 1973년 주 헌법을 개정하여[9장 3조], 하와이주의 다민족 문화를 보존·개발한다는 문구를 삽입하면서 다문화 정책을 공식적으로 헌법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주 정부의 정책 없이도 지난 120여 년간 하와이의 다문화는 하와이 주민의 일상생활 속에 자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