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역사/근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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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미국 하와이주 호놀롤루시 돌 스트리트 2444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1년~196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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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75년~1979년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7년~2001년 |
현 소재지 | 미국 하와이주 호놀롤루시 돌 스트리트 2444 |
1961년 이후 하와이대학교 평의회에 참여한 재미 한인 이사.
하와이대학은 1908년에 농과기술학교[College of Hawaii]로 시작했고, 1913년 농림대학에 첫 한인 학생 오용운[Cloud Owen]이 입학하여 1918년 졸업하면서 재미 한인 사회와 직접 연계되기 시작했다. 1918년 하와이대학의 종합 대학 개편 추진을 위해 438명의 하와이 인사들이 계획서를 서명 제출할 때 유일한 박사 학위 소지자 이승만[Dr. Syngman Rhee] 등 재미 한인들이 참여하였다. 하와이 의회에서 1919년 4월 30일 안건이 채택되어, 1920년 9월 학기부터 하와이대학은 종합 대학으로 승격하였다. 하와이대학교는 1920년도에 재미 한인 학생이 10명 미만이었으나, 1930년도에 20~30명 수준으로 늘어나면서 재미 한인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국어, 한국사, 한국 문화 등 강의의 개설을 청원하게 되었다. 이에 대학에서는 한인위원회를 조직하고 이원순, 김유택, 양유찬, 강영복, 이태성 등을 위원으로 위촉하여 관련 청원에 대한 실황 조사를 맡겼으나 바로 관련 강의가 개설되지는 못하였다. 이후 하와이대학교 평의회[UH Board of Regents]에 한국인이 참여한 이후 숙원이 이루어졌다.
1914년에 조직된 하와이대학교 평의회에 한인 2세 리차드 유 박사[Dr. Richare You]가 1961년부터 1963년까지 참여하여 활동하였고, 한국어 강의는 1961년, 한국사 강의는 1963년에 개설되었다. 나아가 1972년에는 한국학연구소[소장 서대숙]가 개설되었고 한국식 연구소 건물[본관은 경복궁 근정전, 별관은 향원정을 모델로 함]이 세워져서 본격적인 한국학 연구 지원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하와이대학교 평의회에는 이후 안나 장 박사[Dr. Anna Chang]가 1975년부터 1979년까지, 한인 1세 김창원[Donald Chang Won Kim]이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이사로 참여하였다. 특히 김창원은 1998~2000년 사이에 평의회 회장을 지냈다. 평의회와 별도로 1955년 조직된 하와이대학교 후원회[UH Foundation]에도 한인으로는 듀이 김(Dewey Kim), 최성대, 김창원[1994~1997], 이덕희[1997~] 등이 참여하였다.
하와이대학교 운영 및 후원에 재미 한인들이 적극적인 참여하여 활동한 모습은 하와이에서 한인 사회의 위상 강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재미 한인들의 참여로 하와이대학교에서 한국 관련 제반 지원 활동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지는 창구 역할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