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북미 한인 이민자의 노동 현장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미국  
시대 근대/개항기
상세정보
정의

1900년대 초 농장과 과수원 등 초기 미국 이주 한인들이 겪은 각종 노동 현장 개괄.

개설

초기 하와이 이주 한인들은 1903년 1월 13일 갤릭호 편으로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하면서부터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을 중심으로 집단으로 생활하며 노동했다. 초기 하와이 이주 한인 노동자들은 첫 계약 기간이 끝난 후 1905년부터 임금이 더 높은 일자리를 찾아 미국 본토로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한인 이민자들의 노동 현장은 사탕수수 농장, 오렌지 농장, 파인애플 농장, 카네이션 농장, 포도 농장, 커피 농장 등 각종 농장과 과수원, 철도 부설 공사 현장, 광산, 알래스카 어장 등까지 확대되었다.

역사적 배경

하와이에서 사탕수수 농장이 조성된 것은 19세기 중엽부터이다. 1876년에 미국과 하와이 왕국이 호혜 협정을 체결하면서 하와이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설탕에 대한 무역 관세가 철폐되고,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화는 더욱 가속화된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은 계속 확장된다. 그러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할 노동력이 부족하게 되면서 하와이 농장주들은 중국, 일본, 한국의 노동자들을 유입하기 시작했다. 한인 이민자들이 북미에서 노동을 시작한 것은 1903년 1월 13일 갤릭호 편으로 102명의 한인이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하면서부터이다.

변천

사탕수수 노동자 신분으로 하와이에 도착한 한인들은 오아후섬, 하와이섬[빅아일랜드], 마우이섬, 카우아이섬 등에 있는 30여 곳의 사탕수수 및 파인애플, 커피 농장 등으로 흩어져 집단으로 생활하면서 노동했다. 초기 한인 노동 이민자들은 노동 계약이 끝난 후 미국 사정을 알기 시작하면서 1905년 초부터 미국 본토로 더 높은 임금을 찾아 떠났다. 하와이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한 재미 한인들은 농장이나 과수원을 찾아 떠나는 이들과 철도 공사 현장이나 광산을 찾아 떠나는 이들로 나누어졌다.

재미 한인들이 직업을 찾아 여러 곳에서 일하면서 한인의 정착지는 알래스카 어장, 유타주 솔트레이크(Salt Lake)와 오그던(Ogden) 철도 공사장, 콜로라도주 덴버[Colorado, Denver] 탄광, 와이오밍주 슈피리어[Wyoming, Superior]와 락스프링(Rockspring) 탄광, 네바다주의 데이턴(Dayton), 새너제이(San Jose)를 비롯하여 새크라멘토(Sacramento), 윌로우스(Willows), 스톡턴(Stockton), 만티카(Mantica) 등으로 확대되었다.

1905년 2월 북태평양철도회사인 노던 패시픽 레일웨이(The Northern Pacific Railway)와 그레이트 노던 레일웨이(The Great Northern Railway) 등은 하와이 호놀롤루에서 문석홍이 경영하는 한성 호텔에 머물면서 철도 공사에 필요한 노동자를 뽑았다. 당시 미국에서는 대륙 횡단 철도 부설 공사가 한창이어서, 1905년부터 1909년까지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또한 1905~1906년 사이에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인 리버사이드(Riverside), 업랜드(Upland), 레드랜드(Redland) 지방으로 이민자들이 많이 몰린 것은 당시 오렌지 산업이 호황이어서 일자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1907~1908년부터는 중부 캘리포니아 디뉴바(Dinuba)를 중심으로 포도와 복숭아밭으로 재미 한인 노동자들이 몰렸고, 롬팍 핸포드 탄광, 프레즈노 근처 아이드리아 수은광 등도 재미 한인 노동자들이 찾곤 했다.

참고문헌
  • 윤병욱, 『나라 밖에서 나라 찾았네』(박영사, 2006)
  • 『북미주 한인의 역사』(국사편찬위원회, 2007)
  • 성석제 외, 『100년을 울린 겔릭호의 고동소리: 미주 한인 이민사 100년의 사진 기록』(현실문화연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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