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勞動周旋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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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미국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1904년부터 미국 서부 지역으로 재이주한 초기 한인 이민 노동자를 관리했던 계약 청부업자.
초기의 미국 본토 한인 사회는 노동 주선인에 의한 ‘캠푸’[일명 도급(都給) 및 노동 주선소] 또는 ‘려관’을 중심으로 모인 노동 집약 형태의 사회였다. 또한 일의 성격과 직업 조건에 따라 언제 흩어질지 모르는 철새 노동자들의 독신 위주 사회였다.
노동 주선인은 철도 회사나 농장주와 임금과 작업의 할당량을 계약한 후 노동자를 관리했던 계약 청부업자이다. 한인들은 일명 ‘뽀시’ 또는 ‘보스’라 불렀다. 그런데 노동 주선인들 중에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떼어먹고 줄행랑을 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 또 밀린 여관비나 빌려 쓴 돈을 갚지 않는 손님들이 있어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이에 바이샐리아에 돈을 받아 주는 ‘경제 사무소’라는 사설 기관이 개설되기도 했으나 오래 가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노동 주선인들은 대부분 숙식과 노동 주선을 같이 하는데 여관 전담과 노동 주선 전담의 분업식 동업 체제도 있었다.
미국 하와이에서 미국 서부 지역의 샌프란시스코[상항(桑港)]로 한인들이 들어온 건 1904년부터였다. 본격적인 이주는 1905년부터였다. 하와이에서 미국 서부 지역[샌프란시스코]으로 재이주한 한인들은 노동 주선인을 통해 일자리를 얻었다.
『신한민보』 1915년 11월 25일자에는 레드랜드의 노동 주선인이 박경환에서 장춘경으로 변경되었음을 알리는 관련 기사가 실려 있다. 또한 독립운동가 한시대(韓始大)[1889~1981]가 캘리포니아의 다뉴바(Dinuba)에서 농장 경영과 함께 노동 주선인으로 생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