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주 한인 사회사

원어 항목명 History of Koreans in Southern California
영문 History of Koreans in Southern California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미국 캘리포니아주  
시대 근대/개항기
상세정보
원어 항목명 History of Koreans in Southern California
정의

1904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시에서 안창호가 한인 농장 노동자를 위한 합숙소를 설립하며 시작된 남가주 한인 공동체의 역사.

개설

안창호는 1904년에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 즉 남가주(南加州) 리버사이드에 한인 떠돌이 농장 노동자를 위한 합숙소를 설립하였다. 한인 떠돌이 농장 노동자들은 대부분 1903년에서 1905년 사이에 하와이로 건너간 이민자 중 본토로 이주한 홀몸의 남성이었으며, 남가주의 농장 혹은 서부 지역의 광산에서 일하다. 1910년 미국 본토에 약 1,000명가량 있었다. 한인 노동자들은 미국의 극심한 인종주의와 중국인과 일본인 집단의 틈바구니에서 어렵게 생활하였다. 한인 기독교 교회는 한인 사회단체와 함께 남가주 한인 공동체의 성장에 기여했다. 1905년 로스앤젤레스에 한인 감리교 미션이, 1906년 장로교 미션이 설립되었다.

1910년 한일 합병 후 남가주 한인 사회는 조국의 독립 회복에 적극 나섰다. 1910년 대한인국민회를 필두로, 동지회, 흥사단, 조선민족혁명당, 대한여자애국단 등의 단체가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독립운동 자금 모금에 적극 참여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기까지 미국으로의 이민은 극도로 제한되어, 1945년 해방 당시 미국 본토의 한인 수는 2,000명이 못되었다. 1952년에는 캘리포니아에서 외국인토지법이 무효화되어 부동산을 살 수 있게 되었으며 아시아인에게도 시민권 문호가 개방되었다. 그 결과 수백만 달러 규모의 기업과 수천 에이커의 농장을 경영하는 한인 사업가들이 등장하였으며, 한인의 직업이 전문직과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졌다. 1945년 해방 당시 약 650명이었던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한인 인구는 1960년에도 1,000명 정도에 불과했다.

현재 남가주 한인은 대부분 1965년 이민 문호가 개방된 이후 건너간 사람과 그 후예이다.

참고문헌
  • 『미주 한인 이민 100년사: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서』(한미동포재단·미주 한인이민 100주년 남가주 기념사업회, 2002)
  • 이덕희, 『하와이 이민 100년: 그들은 어떻게 살았나?』(중앙M&B, 2003)
  • 『북미주 한인의 역사』(국사편찬위원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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