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Korean Americans' Politics and Political Organizati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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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Korean Americans' Politics and Political Organizations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미국 |
시대 | 현대/현대 |
원어 항목명 | Korean Americans' Politics and Political Organizati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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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을 계기로 정치력 신장에 주력하고 있는 재미 한인 정치 및 정치 단체의 개관.
1992년 폭동 이전의 재미 한인들은 미국 정치에 대체적으로 무관심하고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데 적극적이었던 흑인들과는 달리 재미 한인들은 개인적인 경제적 안정을 확보하는 것에 치중하였고 그 결과 비정치적[apolitical]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재미 한인 학자 에드워드 장은 재미 한인 사회의 규모가 작아 정치 활동의 전통을 발전시킬 기회가 적었고, 재미 한인들은 독재를 피해 미국으로 간 경우가 많기에 정치 활동에 연루되기를 꺼려했으며, 한국 정부의 감시, 미국 정치에 대한 낯섦 등이 재미 한인들의 비정치성을 낳았다고 강조했다. 유의영 역시 재미 한인들, 특히 재미 한인 1세들의 경우에 고국 지향적인 경향이 지나치게 강하다 보니 미국에서 자율적인 정치 조직을 발전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하였다.
재미 한인의 정치에 있어 가장 커다란 분수령은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이었다. 1991년 흑인 로드니 킹을 폭행한 로스앤젤레스 경찰국 소속 4명의 백인 경찰에 대해 1992년 4월 29일 무죄 판결이 내려지자 발생한 로스앤젤레스 폭동은 재미 한인들에게 많은 피해를 입혔다. 재미 한인들은 폭동 전체 피해액의 절반에 가까운 3억 60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으며 코리아타운에 있는 한인 업소를 지키던 18세 한인 청년이 총격으로 인해 사망하기도 했다.
재미 한인들은 로스앤젤레스 폭동 당시 자신들이 커다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정치력 부재에 있다고 판단하였다. 재미 한인 언론의 대부인 이경원과 한인 변호사이자 활동가인 안젤라 오 등은 로스앤젤레스 폭동이 재미 한인들에게 있어 일종의 자명종이었으며 폭동 이후 재미 한인들은 새롭게 태어났다고 주장하면서 정치력 신장을 한인 사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 결과 재미 한인 사회의 정치는 두 가지 차원에서 커다란 변화를 경험하였다. 첫 번째 변화는 재미 한인 정치의 세대교체이다. 폭동 이전까지 재미 한인 사회의 정치는 이민 1세대가 장악하고 있었으나, 영어에 능통하고 미국 주류 사회와 연결 고리를 지니고 있는 재미 한인 1.5세[어린 나이에 이민을 갔기에 한국과 미국의 문화에 대해 모두 친숙한 세대]와 2세가 재미 한인 정치의 주체 세력으로 등장한 것이다. 두 번째 변화는 한국의 정치에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던 세력이 쇠퇴하면서 미국 정치와의 연관이 당면 과제로 부각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인 사회의 정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당파성에 따라 두 가지 정치 집단으로 분화되기도 했다. 첫 번째 집단은 한인민주당위원회[Korean American Democratic Committee]로서 안젤라 오와 한인 활동가 김봉환 등이 주축인 된 한인민주당위원회는 한인들 역시 미국 인종 차별의 피해자이고 한인들이 향유하고 있는 것은 결국 민권 운동의 결과이기에 다른 유색 인종과의 연대를 강조하였다. 두 번째 집단은 한인공화당협회[Korean American republican Association]로서 이들은 한인들의 물질적 이해는 공화당과의 연대를 통해 확보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공화당 내에서도 매우 보수적인 김창준이 1992년 선거에서 미 하원의원으로 당선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한편 북미 서부에서의 한인 정치는 제도권 영역으로 환원되지 않는 다층적인 측면을 보여 주기도 했다. 즉, 비영리 한인 기구의 형성과 발전이 이루어졌다. 이민자 권익 신장, 이민 노동자 권리 확보 등 진보적인 정치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한인타운노동연대[Koreatown Immigrant Workers Alliance], 민족학교[Korean Resource Center], 한인타운청소년회관[Koreatown Youth and Community Center] 등이 대표적이다.